[프랑스는 지금] 대선 6개월 앞두고 출간된 올랑드 대통령의 ‘대담집’ 논란 일파만파

입력 2016-10-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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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아직도 재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예기치 않은 역풍을 만났다. 각종 민감한 사안에 대한 그의 ‘솔직한’ 발언이 책으로 출간되면서 일파만파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그의 재출마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달 중순에 발매된 무려 660쪽 분량의 책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부제: 임기 5년의 비밀)•Un president ne devrait pas dire ca… Les secrets d’un quinquennat)’는 제목 그대로 올랑드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있었던 각종 비화는 물론 프랑스 사법부, 정적인 니콜라 사르코지, 이슬람과 이민자, 그리고 축구 선수 폄하, 심지어는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대통령이 자신의 속내를 토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제라르 다베와 파브리스 롬이 공동으로 집필했는데, 이들은 올랑드 대통령이 취임 후 그들과 가진 총 61차례의 인터뷰와 엘리제 궁 사적 만찬 대화를 대담집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목 중 하나는 프랑스 판사들을 비하한 대통령의 발언이다. 올랑드는 프랑스 사법부는 ‘비겁한 기관’이라며 모든 고위 판사들은 “숨기를 좋아하고, 고결한 체하며 정치인을 싫어한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의 표지
이 책이 출간된 12일 프랑스 사법부 대표들은 올랑드 대통령의 사법부 비판 발언을 ‘모욕적(humiliation)’이라고 규탄하고 엘리제 궁으로 대통령을 항의 방문했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감독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판사들의 반발은 심각했다. 급기야 올랑드 대통령은 ‘판사들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를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서한을 사법부 수뇌부에 보냄으로써 사태를 일단 진정시켰다. 이 사건은 ‘삼권분립’의 발원지인 프랑스에 상존하는 대통령과 사법부 간의 갈등을 다시 한번 노정하였다.

2011년 사르코지 대통령은 재범자를 아무 감시 조건 없이 석방하여 다시 범죄를 일으키게 방조한 법관을 비판하면서 판사들을 ‘맛을 잃은 완두콩’에 비유했다가 프랑스 사상 초유의 판사들의 파업을 초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에 발생하여 저조한 지지율 때문에 재출마 여부를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올랑드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결정타를 안겼다.

클로드 바르톨론(Claude Bartolone) 하원의장은 “대통령이 그처럼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침묵의 의무는 그의 직분의 일부다”라고 일갈했다. 같은 당 출신의 하원의장이 대통령에 대해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 프랑스 사회당 제1서기(당수)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는 올랑드 대통령이 국민에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책을 썼어야지 기자들에게 맡긴 것은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제 이 두 사람은 사회당 대선 후보로 마뉘엘 발스 총리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금까지 올랑드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해왔던 발스 총리는 캐나다 공식 방문 길에 기내에서 이 책을 읽고 매우 놀라 기자들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이 올랑드 대신 (사회당 대선 후보로) 나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고 프랑스 공영 TV France 2가 24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발스 총리는 귀국 직후 측근들과 회동 후 다음 날 대통령과 만찬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격론이 오갔다고 보도했다.

올랑드의 대담집은 사법부에 대한 비판 외에도 여러 뇌관을 담고 있다. 올랑드는 이 책에서 내년 대선 우파 경선 주자인 그의 정적 사르코지 전 대통령에 대해 ‘무례하고, 악의적이며, 냉소적’이고 돈에만 집착한다고 맹비난하고 있다. 그는 사르코지가 퇴임하면서 엘리제에 많은 스파이를 심어 두었다고도 주장했다.

▲작년 9월 18일 ‘한불 상호교류의 해’ 엘리제 궁 환영 리셉션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환담하는 필자. 왼쪽 끝은 황교안 국무총리.
또한 사르코지가 우파 경선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나 현재 계류 중인 법적 문제의 향배에 따라 그의 꿈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르코지는 2012년 치러진 대선 때 사용한 ‘불법 선거자금’ 문제로 기소되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극우 정당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과 함께 결선에 진출한다면 주저없이 사르코지를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올랑드를 포함한 사회당 지도부는 2002년 대선 때에도 사회당 후보였던 리오넬 조스팽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우파 후보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 당시 국민전선 대표와 함께 결선에 진출하자 시라크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소위 ‘자유, 평등, 박애’로 집약되는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겨냥한 올랑드의 비판에 대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 수다스러운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얼마나 망칠지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프랑수아 올랑드가 어떤 인물인지 안다. 그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사르코지도 결선 투표에서 마린 르펜은 찍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결선에서 극우 세력을 막기 위한 연대에는 올랑드와 입장을 같이했다.

이슬람에 대한 올랑드의 견해도 그가 공식적으로 표명해온 입장과는 차이가 많다. 그는 “이슬람에 문제가 있다”며 “이슬람은 공화국의 종교로서 입지를 강화하려고 한다”고 이 책에서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정체성과 히잡 착용 문제 등에 대해서는 “베일을 쓴 오늘날의 여성이 내일의 프랑스의 마리안(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이 될 것이다”라며 “공화국이 그들을 베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랑드는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까지 너무 많이 입국했다”며 사회당 출신 대통령답지 않은 발언을 해 그의 이중성을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축구 선수들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애들이 백만장자 스타가 되어 가치관이 없다”고 비판한 뒤 “프랑스축구협회에서 선수들을 위한 ‘머리 근육훈련’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왕년의 월드컵 스타 에마뉘엘 프티는 정치인들이말로 정직성을 위한 ‘머리 훈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올랑드는 또 자신이 같이 살아본 여인 중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까운 여인은 세골렌 루아얄이라고 실토했다. 두 사람은 프랑스판 고등고시인 국립행정학교(ENA) 동기생으로 30년간 사실혼 관계로 살면서 네 명의 자녀를 낳았다. 루아얄은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해 여성 최초로 결선투표까지 진출했으나 사르코지에게 패배했다. 현재 그녀는 올랑드 정부의 환경장관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전처를 내각의 요직에 기용하는 인사는 우리 사회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드나 프랑스인들은 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직무 수행과 사생활은 별개로 보기 때문이다. 올랑드의 현재 애인은 18년 연하의 영화배우 쥘리 가예다. 올랑드는 가예가 자신과의 관계를 ‘공식화’하기를 원하나 이를 들어 주지 않고 있다고 대담집에서 밝혔다.

이 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은 재임 시 취한 일부 결정들에 대해 진실을 알리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르 피가로는 올랑드 자신도 책을 보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그의 측근들을 인용 보도했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앙드레 베르코프는 ‘대통령 기자의 비극적 코미디’란 제하의 르 피가로지 기고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패러디해 ‘올랑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insiparlait Hollanthoustra)’라고 비꼬았다. 그는 “게걸스러운 기자들에게 수백 시간 동안 털어놓은 내밀한 생각들은 올랑드 자신도 모르게 대량 살상 무기가 되었다”며 “이는 정예 사격수가 자기 자신에게 권총을 들이대는 자살 행위”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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