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부 기자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모두 좋게 봐줘서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국민이 변화에 대한 갈망을 표출한 것이라고 치자. 그러나 그 변화가 어떤 것일지 뻔히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정치인들을 먼저 욕하지 않을 수 없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브렉시트로 영국에 막대한 타격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EU 탈퇴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어찌나 이미지가 안 좋았던지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과 도널드 트럼프의 거듭되는 막말 파문에도 결국 대선에서 지고 말았다.
미국과 영국 유권자들도 정치인을 욕할 자격은 없다. 국민투표가 끝나서야 브렉시트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영국 유권자, 9ㆍ11 테러가 버락 오바마의 탓이라는 트럼프 지지자 등. 아니 부패한 정치인은 싫다면서 탈세 혐의가 짙은 트럼프를 뽑는 그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빌 클린턴의 성추문을 혐오한다면서 트럼프의 각종 성추행과 음담패설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프랑스 사회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개념 없는 유권자들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될 다른 나라의 국민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민주주의에 있어 무식은 가장 큰 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다만 바라는 것은 미국에 독일 나치의 망령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독일 나치가 어떻게 정권을 잡았을까. 바로 선거라는 합법적 수단을 통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