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TPP는 ‘미국의 재앙’, 취임 첫날 탈퇴 통지”…환경·에너지 문제에도 정반대 행보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의 ‘레거시(유산)’가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도널드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면서 오바마가 임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가장 먼저 없어질 유산이 됐다고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 취임 첫 100일간 실시할 집중 정책과제를 밝히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취임 첫날인 내년 1월 20일 TPP 참가국들에 미국의 탈퇴를 통지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가 TPP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대선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TPP를 미국에 ‘잠재적 재앙(Potential Disaster)’이 될 것이라고 묘사하면서 “미국에 일자리와 산업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공정한 양자 무역협정 협상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TPP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오바마에게 가장 쓰라린 상처로 남을 전망이다. 오바마는 이날 트럼프의 선언에 앞서 TPP 실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전날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세계 질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국”이라며 “TPP를 포기하면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지위가 저하된다”고 트럼프의 고립주의 노선을 강하게 견제했다. 이어 “아태 지역이 미국의 번영에 얼마나 중요한지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바마에게 TPP는 군사와 외교의 축을 아시아로 옮기는 ‘재균형 정책’의 핵심 전략이었다. 아시아 각국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어 남중국해 등에서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을 완성하기 위한 포석이 바로 TPP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바마가 발언한지 하루 만에 ‘TPP 탈퇴’라는 못을 박아버렸다.
블룸버그통신은 TPP 참가국 12개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한다며 이는 미국이 지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서명한 이후 가장 중요한 무역협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우리의 어젠다는 간단한 핵심 원칙인 ‘미국을 모든 것에 우선한다’에 기반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사실상 무역질서를 미국이 주도한다는 오바마의 노선과 정반대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가 연설에서 NAFTA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보호무역주의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NAFTA의 장래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도 오바마와 전혀 다른 행보를 취하고 있다. 오바마는 화석연료를 규제하고 청정에너지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파리기후변화협정도 주도했다. 반면 트럼프는 이날 “에너지 방면에서 고소득 일자리 수백만 개를 창출할 수 있는 셰일에너지와 청정석탄 등의 생산을 저해하는 규제를 폐지할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미국이 원하고 기다려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는 “연방정부가 새 규정 하나를 제정할 때마다 다른 두 개 규정을 폐지하도록 하는 원칙을 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안보와 관련해서는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사이버 공격과 기타 잠재적 위협에서 미국의 인프라를 보호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노동부에는 미국 근로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자프로그램 남용을 조사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정치계에 미치는 로비스트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행정부를 떠난 관리가 로비스트가 되는 것을 5년간 금지하고 고위 관리에 대해서는 외국 정부를 대표하는 로비스트가 평생 될 수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