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4일 치러지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이탈리아 현지 은행 8곳이 파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은행 간부들의 발언을 인용해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해 현지에서 최대 8개 은행이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파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국민투표 부결 시 파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큰 은행으로 이탈리아 3대 은행인 BMPS(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와 함께 중형 은행인 포폴라레 디 빈센자, 베네토 방카, 카리지를 꼽았다. 소형 은행으로는 방카 유트루리아, 카리치에티, 방카델레마르세, 카리페라라 등을 지목했다. 이들 4개 소형은행은 지난해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BMPS 등 은행들이 민간 주도로 자본을 확충해 부실은행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 지향적 해결책을 추진해왔다. 국민투표가 부결돼 그가 사임하면 이 같은 계획에 따른 투자 유치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렌치 총리는 내달 4일에 치러지는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사임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는 상원 규모를 대폭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에 찬반을 묻는 것이지만 현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하다. 만약 개헌안이 부결되면 렌치의 민간 주도 은행 개혁안 대신 은행의 손실을 채권자와 투자자가 부담하는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결의안을 따라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렌치 총리는 EU 결의안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은행채 주요 채권자 중 일반 시민 비중이 높아 손실에 대한 채권자 부담을 높이는 쪽으로 개혁을 추진할 경우 개헌투표에서 표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
렌치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진행하는 이번 개헌 투표가 부결되면 렌치 총리가 추진했던 개혁도 수포로 돌아가 이탈리아 NPL 해결책은 방향성을 잃게 된다고 FT는 전망했다. 로렌조 코도그노 전 이탈리아 재무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민투표 이후 가장 큰 우려는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과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말했다. 코도그노 이코노미스트는 “국민투표 직후 공표 예정인 이탈리아 은행권의 자본 확충 방침은 (국민투표가) 부결됐을 경우 훨씬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BMPS는 국민투표 다음날(다음달 5일) 출자전환 작업을 시작한다.
이미 이탈리아 은행들의 부실채권(NPL) 유로존 뇌관으로 지목된 상태다. 경기 부진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일부 기관들에 의한 부실대출 증가에 대한 이탈리아 은행 당국과 정부의 일련의 개혁 실패 후 이탈리아의 NPL 규모는 3600억 유로로 불어났다. 반면 은행들의 자산은 2250억 유로에 그친다. NPL규모가 이들 자산 규모를 훌쩍 웃도는 것이다. 은행 고위 관계자들은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재 이탈리아 NPL 우려의 진원지인 BMPS가 50억 유로 규모의 자본확충에 실패해 이탈리아 은행권에 대한 신뢰를 쌓지 못하고 결국 중소형 은행들도 악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8개 은행들은 모두 파산하고 현지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딧의 130억 유로 자본 확충 문제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탈리아 은행권의 자본재구조화 노력이 실패할 경우 이 문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체가 또 다시 술렁일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