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부터 ‘탄핵 가결’까지 지난 4년여 동안 롤러코스터 여정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통령에 당선됐지만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의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유례없는 사례를 남겼다.
박 대통령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79년 10월 26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칩거생활을 해오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선 것이다.
이듬해인 1998년 4월 박 대통령은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5선 의원을 지냈다.
박 대통령은 한나리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다. 특히 당시 한나라당이 2004년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된 박 대통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쇄신 작업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유력 대권 주자로 발돋움한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서울시장 출신의 이명박 후보와 접전 끝에 패배했다. 이때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박 대통령은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거치며 당내 비주류로 전락한 친박(친박근혜)계를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이러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2012년 8월 84%의 득표율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이후 12월19일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 대통령은 51.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 대통령은 1987년 13대 대선에서 직선제가 재도입된 이후 처음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71년 7대 대선 이후 41년 만에 과반 지지율을 획득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펼쳐왔다. 하지만 집권 4년 차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박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의 통상적으로 겪는 레임덕 수준을 넘어 즉각 하야 요구를 받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박 대통령의 18년 정치 인생을 뿌리째 흔드렸다. 박 대통령은 그간 3차례 담화를 통해 “1998년 정치 시작부터 오늘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호소했으나 성난 촛불민심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국회의 탄핵으로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상실한 박 대통령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최장 180일 걸리는 탄핵심판의 법리 싸움에 18년 정치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