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금융권 불안 지속에 유로화 맥 못 춰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기대로 달러화 가치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선 이탈리아 금융권의 위태로운 모습에 역내 경제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유로-달러 패리티(등기)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22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도쿄외환시장에서 이날 유로ㆍ달러 환율은 1.04달러 선에 움직이고 있다. 유로ㆍ달러 환율은 지난 20일 일시적으로 1.03달러대 중반까지 떨어지면서 지난 2003년 1월 이후 약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나서 계속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탈리아 은행들의 파산 우려가 대폭적인 유로화 약세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탈리아 3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라는 명성을 지닌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다. 막대한 부실 채권을 가진 이 은행은 자본확충이 절실하며 증자 계획을 이날까지 밝히기로 돼 있다. 그러나 소식통들에 따르면 BMPS의 자체적인 증자는 어려운 상황이다.
BMPS는 지난 7월 50억 유로(약 6조2345억 원) 자본을 확충하고 부실 채권을 증권화해 92억 유로 상당을 매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재건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증자액은 은행 시가총액을 크게 웃돌고 있어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실현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또 지난 4일 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안이 부결되는 등 정국이 혼미해진 상황이어서 투자자들이 BMPS 유상증자에 더욱 신중한 입장이 됐다. 이에 이탈리아 증시에서 BMPS 주가는 전날 12% 폭락했다. 지난 1년간 하락폭은 약 90%에 이른다.
이탈리아 정부도 상황이 다급해지자 행동에 나섰다. 의회는 전날 자국 은행산업에 정부가 최대 2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한다는 정부 방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으로 사태가 일단락될지는 불확실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은 역내 회원국이 공적자금으로 은행을 구제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EU 규정에 따르면 정부가 민간은행을 구제하려면 먼저 주주와 채권자가 일정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EU가 이런 규제를 도입한 이유는 은행권 불안이 국가 재정위기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례를 통해 국가가 은행 위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해 결국 더 큰 위기로 번지는 단점도 부각되게 됐다. 이탈리아는 개인이 많은 은행 채권을 보유해 EU 규정을 따라 은행 구제를 진행하면 개인이 많은 손실을 보게 된다.
또 우려되는 점은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우니크레디트에 미칠 영향이다. 우니크레디트는 지난 12일 130억 유로의 증자를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시장은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BMPS의 향후 동향에 따라 우니크레디트 증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은행 구제에 실패하면 이탈리아에서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EU 회의론자들이 다음 총선에서 더욱 세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유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내년 이탈리아 이외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 다른 나라에서도 총선이 예정돼 있어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