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미국은 왜 아시아를 잃고 있는가?

입력 2016-12-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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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세모의 허를 찌르는 대형 기사가 터졌습니다.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이 이끄는 항모전단이 23일 한국의 서해 해상에서 함대공 미사일을 쏴 대고 함재기 이착륙 훈련을 한 데 이어, 이틀 후 일본 오키나와 본섬과 미야코(宮古) 섬 사이 미야코 해협을 통과, 서태평양 쪽으로 뻗어 나간 것입니다.

작전 반경 권내에 태평양마저 선뜻 포함한 이번 중국 해군의 비상(飛翔)으로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완전한 항모전단을 운영하는 데는 적어도 4 ~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요량해 온 미국 등 서방전문가들의 진단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중국 국방부 양위쥔(楊宇軍) 대변인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중국 항모는 이제 더는 ‘집구석 남자’가 아니다. 반드시 원양으로 나갈 것”이라고 비아냥 섞인 논평을 달고 있습니다.

이번 항모전단 훈련에 담긴 중국 측 저의는 항로를 살피면 쉽게 읽힙니다. 중국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로 둘러싸인 발해만(渤海灣)에서 출격한 항모전단이 우리의 서해 상에서 사실상 실전 훈련을 벌인 것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인 한국을 겨냥한 몸짓으로 풀이됩니다. 또 중국 항모전단이 황해를 통과 후 남중국해를 거쳐 태평양에 이를 수 있는데도 굳이 일본 미야코 해협을 우회 통과한 것은 동중국해 상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소유를 놓고 일본과 중국이 치러온 해묵은 분쟁과 유관한 것으로, 제국주의 시절 유행한 ‘거함거포 외교(Gunboat Policy)’의 전형적인 리플레이로 해석됩니다.

이번 중국 항모전단에 동원된 병력 규모는 항모 랴오닝함 말고도 정저우(鄭州)호 등 미사일 구축함 3척, 옌타이(煙台)호 등 미사일 호위함 3척, 종합 보급함 가오요후(高郵湖) 등 모도 8척에, 함재기인 젠(殲)-15 전투기 13대와 Z-18F 반잠(反潛) 헬기를 비롯한 다수의 전투용 헬기 등입니다. 전 세계 해역을 누벼온 미 항모전단에 비해 크게 손색없는 명실상부한 매머드 전단으로, 최종 작전해역이 태평양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번 출동의 알맹이 저의가 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태평양의 주인 격인 미국에 도전장을 던지는 해양작전이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대단한 오만입니다. 중국의 이런 오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번 주 타임지(誌)는 그 오만의 근인(近因)에 관해 ‘미국이 아시아를 잃고 있는 이유(Why America is losing Asia)’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 우선 인도네시아의 경우부터 따지자. 올 한 해 동안 이 나라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세 배로 늘었다. 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나라의 외화 수입은 다른 아시아 국가처럼 전적으로 중국 관광객한테 의존하고 있다. 100년 넘게 친미 국가로 알려진 필리핀은 어떤가. 그 나라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한때 종주국이었던 미국에 대한 증오를 대놓고 표현하고 있고, 이 나라에 대한 중국의 투자 역시 미국을 훌쩍 능가하고 있다. 부정축재로 규탄 받는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의 경우 한때는 오바마 미 대통령과 수시로 골프를 즐길 정도로 친숙했지만, 지금은 미국에 등을 돌렸고 지난 11월 베이징 방문을 통해 30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약속받은 바 있다.”

뚜껑을 열어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의 군사 요새화로 필리핀으로부터 피소되고, 지난 7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PAC)에서 패소했음에도 수중도시 건설 전문업체인 중국 체신공사(CCCC)가 최근 인근 7개 섬에 대한 통신 개설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 미 정찰 우주선에 잡힌 사진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체신공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 홍해의 지부티를 중동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듯, 필리핀 로드리고 해안 도시 다바오 항을 근거지로 서태평양 일원에 수중도시의 건설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0월 중국을 방문한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과 베이징 정부 사이에 체결한 밀약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해 훈련을 마치고 서태평양으로 진출한 중국군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 뉴시스

한마디로 집권 4년 차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공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만, 말을 바꾸면 오바마 미 대통령의 실책, 더 깊게는 외교 문외한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을 겨냥한 분석으로 보입니다. 집권 한 달도 채 안 된 정황이 이렇거늘 내년 1월 20일로 예정된 그의 취임 이후의 미·중 관계가 과연 어떠할지 너끈히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입니다.

이런 판국에 트럼프가 지난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의 통화를 통해 두 개의 중국을 넌지시 시사,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 이번 중국 항모전단의 출진 이유로 보는 유력한 해석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대만 지도자와 통화한 것은 1979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더 멀리는 트럼프 등장 이후 더욱 완연해진 미·중 간의 무역 전쟁 탓으로 돌리는 해석도 유력합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중 “중국이 미국 일자리를 훔쳐갔다”면서 중국 수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심지어는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한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재수출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35%의 관세 부과를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국채 보유액은 1조 달러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의 말마따나 ‘베이징 정부가 미국의 은행’이듯 미국 재무부 경매에서 가장 큰손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국과 시비를 가리는 것이 너무도 위험하다는 요지입니다. 트럼프가 유세에서 공언한 대로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물릴 경우, 중국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를 팔아치워 미국 내 금리를 끌어올림으로써 ‘무례한 라오와이(老外·외국인)에게 보복’하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실제로 지난 14일을 기해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통화에서 시사했듯 하나의 중국을 무시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미국을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트럼프의 공약대로 중국 제품에 대해 45%의 관세를 부과하려면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지금처럼 인정받지 못해야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이처럼 중국에 대해 전통적인 무역 분쟁을 일으킨다면 그 위험은 더욱 분명해지고 직접적이라는 것이 뉴스위크의 진단입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을 초래한다는 이야깁니다. 더 심각한 것은 미·중 간의 이러한 무역 분쟁은 비단 두 강대국 사이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당장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중국 역시 북한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카드로 악용할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북한과 합동군사훈련에 나설 수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진단은 그런 데 기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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