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에 말 걸다] 그립다, 그 사람…변호인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입력 2016-12-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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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작가

세밑이다. 올 한 해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격동의 시간이었다. 아니 지금도 대형 이슈들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나날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보다 요즘은 역사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은 청와대에 유폐되어 있지만,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불행히도 현직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공분의 대상이 되면 될수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탄핵이라는 동병상련을 겪었지만, 국민들이 내리는 두 사람의 평가는 차이가 많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을 찾은 사람들의 숫자가 평소보다 두 배가 늘었다고 한다.

봉하마을 ‘추모의 집’에서 상영되는 노무현의 육성은 그대로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 만큼 잘사는 사회,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이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곳에 찾는 발길이 부쩍 늘어난 게 아닐까? 박정희,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참배객 수도 역시 작년 딱 이맘때보다 두 배로 역전되었다. 딸 박근혜는 아버지까지 망친 것이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한국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흥행 영화가 된 사례는 노무현이 유일하다. 영화 ‘변호인’은 여전히 반노, 비노가 존재하는 정치 풍토에서 상업적 영화에 노무현이라는 비운의 정치인을 메인 소재로 하여 시도된 모험이었다. 충무로를 잘 아는 흥행 전문가도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천하의 송강호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지만, 노무현이라는 민감한 소재가 흥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그러나 대박을 터뜨린다. 무려 천만 영화의 신화를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산업화’,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내는 기적을 이루었다. ‘짧은 세월 대비 높은 성취’다.

▲송강호가 열연한 ‘변호인’.

영화 ‘변호인’은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부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5공화국 독재 치하가 그 뿌리를 더욱 공고히 내리기 시작한 1980년대 초입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노력 끝에 송우석(송강호)은 세무전문 변호사로 자리 잡는다. 돈도 꽤 벌지만, 운명처럼 ‘부림사건’과 만나게 된다. 당시 부산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세력을 좌경 용공으로 조작하여 감옥에 보낸 사건이 바로 ‘부림사건’이다. 실제로 노무현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속물적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서서히 변해간다. 이 변화 과정을 영화는 담담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가 성공한 원인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밋밋하고 재미없이 그려냈던 법정 장면을 긴장감 있고 리얼하게 담아 냈기 때문이다. 법정 신의 하이라이트는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을 자행하고 사건을 조작한 경찰 간부 차동영 경감(곽도원)에게 분노하는 장면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있는 말이지만 당시엔 생소했고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송강호 정도의 배우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말일 수도 있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의 힘은 그만큼 컸다. 이후로 이 법언은 서울광장 집회의 단골 구호가 되었다.

변호사 송우석과 한판 대결을 한 차동영 경감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스틸러다. 실존 인물인 이근안 경감(당시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지금은 목회 활동 중)을 염두에 둔 캐스팅이었다. 그 역시 나라에 애국하고 있다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또 한 명의 빛나는 조연, 구속 학생 어머니 역할을 해준 김영애의 연기는 한국 영화 어머니 연기 중 최고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생때같은 자식을 감옥으로 보내고 감옥 밖에서 투쟁해온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헌사 같은 연기였다.

▲2000년 총선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 후보.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흐려질 무렵, 올해 다시 노무현 열풍을 몰고 온 영화 한 편이 있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4위를 기록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정치 다큐로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여 약 20만 명 이상의 관객몰이를 지금도 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역사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이 파리와 런던이라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은 부산과 여수다. 부산은 노무현이 지역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바보 노무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총선에 출마한 곳이고, 여수는 이제는 고인이 된 백무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국회의원에 도전해 실패한 곳이다. 2000년 부산과 2016년 여수를 교차하여 두 사람의 정치 역정을 화면에 담아냈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매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 역시 그의 진정성 정도는 엿볼 수 있는 땀내 나고 사람 향기 나는 다큐멘터리였다.

영화의 시작은 노무현의 육성으로 시작한다. “역시 실패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일이고, 역사를 주재하는 신이 심판을 합니다.” 그는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다방에 들어가 다방 주인과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보좌진과 연설문 수정을 의논하기 위해 밤잠을 아끼며 토론하였다. 그런 열정과 진정을 알아서일까?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필자가 기억하는 에피소드 한 토막. 1987년 6월항쟁이 한창인 시기, 연세대 노천극장에선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 초청받아 연사로 온 당시 노무현 변호사(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는 여느 격앙된 연사들과는 달리 차분하게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다 좋은 대학 다니는 엘리트입니다. 한데 전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어요. 지금 보니 독재를 하거나 독재를 돕는 분들 중에 명문대 출신들이 참 많습디다. 여러분의 마음과 제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변하지 마소. 끝까지 지금 이 마음 지켜서 훌륭한 나라, 민주주의 기똥차게 하는 나라 함 만들어 보입시더.”

다소 생뚱맞은 연설에 집회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묘한 울림과 여운을 주는, 지금 생각해 보면 명연설이었다.

며칠 전 청문회에서 본 우병우(서울대 84학번) 씨도 그곳에서 이 연설을 들었더라면 양심적 엘리트가 되었을까? 영화판 사람들이 유독 정부가 만든 블랙리스트 명단에 많은 것도 ‘변호인’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안타까운 건 새해 새날이 와도 그리 쉽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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