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깁슨과의 몇 차례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점은 그의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것. 좌불안석에 황소 눈알을 굴려가면서 고함을 지르다시피 하며 답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최근 베벌리 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만난 깁슨은 세월 탓인지 정서가 많이 안정된 것 같았다. 그는 인도 도사 같은 수염을 계속해 쓰다듬고 몸과 손으로 큰 제스처를 하면서 시치미를 뚝 뗀 유머까지 섞어 힘차게 대답했다. 체격만큼이나 안으로도 매우 건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의 어느 점이 마음에 들어 감독하기로 결심했는가.
“나는 이 영화를 전쟁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필히 가져야 할 사랑의 얘기이자 형제를 결코 해치지 않겠다는 사랑의 얘기다. 또 자기 목숨을 남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의 얘기다.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 도스는 지상의 지옥인 전장에서 폭력과 핍박과 차별의 물결을 거슬러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사랑을 보여준 선험적이요 순수한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영웅정신의 절정이라고 하겠다. 각본을 읽었을 때 이런 얘기가 내 심장을 꿰뚫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감독의 할리우드 복귀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영화를 감독한 지 오래되지만 그것은 한 번 배우면 잊지 않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다시 타니 편하고 기분 좋다. 그동안 쉬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계속 각본을 쓰고 영화를 구상해왔다. 지금 구상 중인 영화가 4~5편쯤 된다. 물론 그동안 이런저런 영화에서 연기도 했다. 쉬면서 좋았던 것은 제물낚시를 배운 것이다. 난 지금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좋은 상태다.”
△이런 훌륭한 얘기가 왜 이제야 만들어졌나.
“데스몬드가 지극히 사적인 사람이어서 자기 얘기를 영화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평생 한 번도 영화관에 가지 않은 사람이다. 1948년부터 영화인들이 이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접촉했으나 그는 거절해왔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자 마음이 누그러져 영화화 판권을 다니는 교회에 넘겼고 교회는 조건을 달아 영화화를 허락했다. 데스몬드는 자기 얘기를 자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세상에 이 영화가 무엇인가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그렇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전쟁을 둘러싼 작품이지만 사랑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전쟁의 참상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까닭은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을 치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쟁의 참혹상을 알려주고, 전쟁의 공포를 초월하기 위해선 영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견디고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지닌 영화다.”
△배우들을 어떻게 군대식으로 훈련시켰나.
“군인들을 불러다 훈련시키긴 했으나 길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팀이 되어 정신을 집중해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금방 맥주 친구들이 됐다. 명교관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영화에 군인으로 나온다.”
△영화가 다룬 것은 오키나와 전투인데, 어디에서 찍었나.
“오키나와는 너무 멀어 못 갔고 호주에서 찍었다.
△데스몬드는 부상한 일본군도 구출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가 고지에서 일본군을 들것에 실어 아래로 내릴 때 미군들은 중지하라고 했으나 그는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터널에서 심하게 부상한 일본군을 만나자 모르핀을 놔줘 고통을 덜어주었다. 이런 것이야말로 영화의 본질이다.”
△감독은 데스몬드같이 용감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난 비겁자다. 나도 가끔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을 하긴 하나 또 때론 그렇지 못하다. 내가 이 얘기를 좋아하게 된 까닭도 데스몬드의 용기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난 상상 속에서도 그가 간 길을 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용기야말로 얘기할 만한 게 아닌가.”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가 왜 전쟁에 지원해 나갔다고 보는가.
“그는 전쟁은 증오했지만 그의 형제들을 사랑했다. 우린 전쟁을 증오해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전쟁은 늘 있어왔고 또 늘 있을 것이며 인류는 아마도 전쟁으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30~40년마다 일어나 우리의 귀싸대기를 때리곤 한다. 그리고 한두 세대 동안 쉬었다가 또 일어난다.”
△한때 할리우드의 스타로 명성을 날렸는데 그것이 그립기라도 한가.
“그럼 내가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명성이란 사라지게 마련이고 난 과거에도 그것을 그렇게 즐긴 편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내게는 다른 삶이 있다. 아이들과 로맨틱한 일들이 내겐 아직도 제대로 있다.”
△데스몬드는 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했는데 상징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삶의 무기인가.
“영화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영감을 불러일으켜주고 그들을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만들 수 있다. 난 영화의 임무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교육하며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이 이론을 따르려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일을 해냈다.”
△할리우드를 떠나 있을 때 무엇이 가장 그리웠나.
“영화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러지 못할 경우 다른 방법으로 얘기를 하곤 한다. 글을 쓰고 요리를 하는데, 요리란 그 자체가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얘기이다. 가능한 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창조적 필요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신은 젊은 여자로부터 행복과 사랑을 찾는 것 같은데 그들이 삶에서 잃은 것이라도 채워주는가.
“나이란 숫자일 뿐이다. 내 애인(24세의 로잘린드 로스-승마선수로 현재 깁슨의 아이를 임신)은 어른이고 우린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다.”
△삶에서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가.
“내 일이다. 다음은 내 아이들.”
△영웅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자기를 버리는 희생이다. 성공적인 결혼을 한 사람들은 영웅이다. 그들은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것은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종교적 의미가 강한 이 영화에 대한 종교단체의 반응은.
“제7일 안식일 교회를 비롯해 전국 여러 종교단체가 좋은 반응을 보였다. 어떤 장면은 보기가 힘들었지만 좋은 메시지 영화라는 데 공감하는 것 같았다. 데스몬드는 겸손한 사람이다. 저기 어딘가에 자기보다 더 중요하고 큰 것이 있다는 걸 믿지 않고서는 겸손할 수가 없다. 우리보다 더 위대한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좋은 메시지가 어디 있는가.”
블로그:hjpark1230.blogspot.com
집총 거부자의 무공 실화 ‘핵소 고지’
참혹하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피가 강처럼 흐르는 전쟁영화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있는 것 같은 사실감을 느끼게 한다. 묘하게도 이런 피와 고통의 영화 주인공은 종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한 실제 인물인 의무병 데스몬드 T. 도스(1919~2006). 그는 양심적 집총 거부자로, 최초로 명예무공훈장을 받았다.
버지니아 주 시골 태생인 도스의 민간인으로서의 삶과, 태평양전쟁에 나가 오키나와 전투에서 전우들의 생명을 구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운 얘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원제 Hacksaw Ridge는 오키나와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곳인 핵소 리지로, 우라소에 근처의 큰 언덕 이름이다.
도스는 조국을 위해 1942년 자원 입대하지만 믿음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을 자원해 차별과 배척을 당한다. 결국 의무병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된 도스는 아군이 철수한 핵소 고지에 혼자 남아 부상한 아군과 일본군 등 모두 50여 명을 구출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루 가필드, 샘 워싱턴 등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