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한·중 관계의 위기가 한국 외교에 주는 교훈

입력 2017-01-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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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된 한중 양국의 갈등 전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한국 정국의 취약성이 중국의 희망적 기대를 자극해 향후 중국의 공세는 더 조직적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는 외교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인해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제시되지 못한 채 단지 대안 없는 반(反)중국 정서만 날로 확대되고 있다. 양국 간 현재의 갈등 국면보다 더 큰 문제는 관계 회복을 위한 출구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중 관계는 국가 차원의 이해 충돌이 해묵은 민족 감정을 자극하면서 매우 신속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은 다반사이다. 이러한 이해 대립을 외교 경로를 통해 타협을 모색해갈 수 있는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중 관계는 수교 25년의 짧은 기간에 유례없는 비약적 관계 발전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2015년 기준으로 수교 이후 양국 간 무역액은 36배, 인적 교류는 80배 각각 증가하여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교류 대상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비약적 발전의 이면에 정작 이해 대립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한 경험은 오히려 많지 않다. 이전 한중 간의 마늘 분쟁, 역사 논쟁 등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감정 대립으로 치닫거나 아니면 봉합하기에 급급했다.

2015년에 ‘역대 최상’이라고 양국 공히 자랑해왔던 관계가 2016년 최악의 상황으로 급반전된 배경에는 이러한 외화내빈의 미성숙한 관계의 불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한중 양국 관계의‘내실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강조하고도 있지만 이미 그 또한 쉽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이 가파르게 부상하면서 한중 관계의 비대칭성도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되었다. 양국 관계가 이제는 더 이상 양자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즉 중국의 가파른 부상으로 인해 중국 외교에서 대강대국 외교(미, 일 외교)가 핵심적 위치를 점유하게 되면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빠르게 중국의 대미, 대일 외교에 종속변수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중 관계의 맥락에서 한중 관계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아울러 중국에 한국의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는 증대하고 있지만 그 결과 오히려 한국의 독자적 입지와 위상은 위축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도 한중 관계는 양자 차원을 넘어서 미국, 일본, 북한 등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는 고차 방정식으로 인식하고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현재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의 갈등도 그 이면에는 미중 관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을 설득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서 사실상 한국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역할 공간은 제한적인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은 냉엄한 현실이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사드 배치 문제가 이전의 사례와 같이 불필요하게 국민 정서를 자극하여 한중 관계 전반을 위기에 몰아넣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이다. 아울러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을 한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 견제에 동참한 구조적 선택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일관된 외교적 설득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사드 문제를 어설프게 봉합하려고 섣불리 시도하기보다는 이번 갈등을 25년 한중 관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정기로 설정하고 일정한 냉각기를 가지면서 장기적 전략 구상과 체계적 대응 경험을 축적하는 계기로 만들 각오도 필요해 보인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한국 간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 건강식품 개발·판매업체인 회격생물그룹 임직원 500명이 지난 3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올 들어 첫 중국 단체관광객으로, 인천시가 ‘인센티브 관광 허브도시’ 전략의 일환으로 유치했다. 연합뉴스

이제 한중 관계의 문제도 한국 외교의 재정립이라는 큰 틀에서 냉정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한중 관계의 위기는 단지 사드 문제만도, 양국 관계에 국한된 사안만도 아니다. 사실상 미중 간 ‘대리경쟁’의 파도에서 한국이 분명한 장기 비전과 전략이 부재했던 결과이다. 현재 미중 관계가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 그럼에도 미중 간 아시아에서의 ‘대리경쟁’은 결코 약화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중 양국은 공히 국내 정치경제적 난제들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고비용의 전면적 갈등과 대립은 회피, 관리하는 반면에 상호 세력권 확장과 ‘대리(代理) 견제와 대응’이라는 경쟁 양상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트럼프 집권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9·11 테러,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이어서 네 번째 ‘상대적 부상’의 기회로 포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 기회에 트럼프 정부와 차별화된 글로벌 리더십을 국제사회에 시현하려는 것이다. 미국 신행정부 또한 ‘미국 우선주의’라는 새로운 시도와 전통 공화당의 개입주의 경향이 마찰하면서 절충해가는 과정에서 아시아 동맹에 대한 비용 및 역할 요구는 안보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영역으로까지 오히려 증대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핵과 사드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는 한국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더 심각하게 미·중 사이에서 압박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간 글로벌 차원의 복합적 관계 변화와는 별개로 한국은 원하지 않는 미중 간 선택의 딜레마에 직면하는 상황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영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제 더 이상 한국 외교가 ‘균형 외교’라는 레토릭 속에서 사실상 전략적이지 않은 모호성만을 견지하면서 즉흥적 대응을 하며 유지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에 도달했다. 예컨대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강행하면서 한중 관계가 최상의 관계임을 과시하였다. 그런데 이어서 미국과 일본에서 제기한 이른바 한국의 ‘중국경사론’에 대해 미일 양국에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이는 결국 한국이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원칙 있는 외교를 전개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틈새에서 ‘눈치외교’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한국은 국내외를 향해 한미 동맹과 한중 동반자 관계는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한국의 행동은 이를 충분히 입증해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15년의 경우 한중 관계의 발전이 상호 호감도를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 내의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약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중 관계에 잠복된 현안들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한중 관계 발전이 결코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국내 정치를 고려하여 한중 관계를 과장한 것도 문제지만, 중국경사론을 의식하여 대미 외교를 전개하는 것도, 결국 한국의 입지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러한 갈지자 외교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새로운 정부는 격변하는 국제 정세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장기적 비전을 마련하고, 그 비전에 적합한 전략을 구상·전개하여 ‘한국의 길’을 주도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외교를 단순히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수단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한국민의 집단 지혜를 집약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길’을 명확하게 제시해 줄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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