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S] 무허가 의약품이 복제약 개발 대조약 지정된 사연

입력 2017-02-17 06:49수정 2017-02-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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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11개월 전 허가취하된 '글리아티린' 대조약 지정..대웅제약, 대조약 지정 공고 취소 행정심판 승소

임상시험에서 대조약은 기업이나 연구자가 개발하려는 의약품(시험약)의 비교 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시험약이 대조약과 비교시 안전성과 유효성이 얼마나 뛰어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가치를 입증한다.

복제약(제네릭) 개발을 위해 진행하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에서도 대조약이 필요하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허가를 받을 때, 보건당국이 지정한 대조약과 비교해 흡수 속도와 흡수율이 동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주로 최초 허가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년 전 허가가 없어진 의약품을 대조약으로 지정하는 이상한 사례가 발생, 업계 실무자들이 술렁이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14일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통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 중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대조약으로 지정됐던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은 대조약 지위를 상실했다.

▲식약처는 지난 14일 허가 취하된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했다.

제약사들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제네릭을 개발하려면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설정해 생동성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글리아티린은 지난해 3월 허가가 취하된 제품이다. 약사법상 무허가 의약품이나 다름 없다. 이 규정대로라면 제약사들은 무허가 의약품과 비교해 동등성을 비교해야 제네릭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대웅제약이 식약처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승소를 이끌어낸데 따른 후속조치다.

▲대웅제약 '글리아티린'
대웅제약은 지난 2000년부터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국내에서 완제의약품을 생산·판매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대웅제약과 이탈파마코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 사용권한과 상표권은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종근당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이 더 이상 ‘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새롭게 대조약으로 지정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허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조약 지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식약처는 판단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글라이티린이 허가가 취하됐다는 이유로 대조약에서 제외했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한 이유는 오리지널 제조업체 이탈파마코의 원료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사실상 원 개발사의 품목과 같다는 판단에서다.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보면 약사법에서 정한 신약,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 등을 대조약으로 지정한다. 신약이나 원개발사 품목의 허가가 취하되면 동일 성분 제품 중 전년도 청구수량이 가장 많은 제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있다.

그러나 대웅제약은 식약처가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한 행정을 문제삼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공고를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이 대조약 공고 삭제 시점에 시중에 충분히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조약 삭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글리아티린의 품목허가가 취하됐다는 이유만으로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한 것은 근거가 분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웅제약은 대조약 변경 과정에서 사전통지나 의견조회 등 사전절차를 거치지 않아 대조약 삭제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논리도 펼쳤다. 또 종근당글리아티린이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중앙행심위는 대조약 지정 절차상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대웅제약의 손을 들어줬다.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위 박탈도 관련 규정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도 인정했다. 식약처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대조약 선정 공고를 이전으로 되돌려놓은 배경이다.

이에 따라 허가가 존재하지 않은 '글리아티린'이 다시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기현상이 연출됐다. 제약사들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제네릭을 개발하려면 11개월 전 허가가 취하된 글리아티린의 재고를 찾아내 생동성시험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행정심판 결과에 따른 한시적인 조치일 뿐, 업계 혼선을 줄이기 위해 빠른 시일내 대조약 지정 절차를 다시 밟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 이 조치를 두고 뒷말이 무성한 이유는 대웅제약이 행정심판에서 승소했지만 기대할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글리아티린이 대조약 지위를 회복했다고 해서 오리지널 의약품를 인정받았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미 허가가 사라진 의약품의 오리지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 제품이 대조약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이 펼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조약은 제네릭 개발시 동등성을 비교하는 대상을 지정한 것일뿐 특정 기업에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약사들은 어떤 제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됐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대웅제약이 대조약 지위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며 재고 소진에 기여하려는 의도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조약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신약이나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주로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사실을 활용해 ‘대조약=오리지널’이라는 사실을 영업현장에서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글리아티린이 여전히 오리지널 의약품이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이 오리지널 업체의 원료를 사용했어도 여전히 제네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인 셈이다. 글리아티린의 허가는 취소됐지만 재고는 여전히 팔 수 있다.

식약처는 행정심판 결과 지적된 내용을 수정해 관련 규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허가가 취하되면 대조약에서 제외되는 내용이 반영될 전망이다. 대조약 지정 과정에서 사전 의견수렴을 거치는 절차도 진행할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의 대조약 지정 여부는 생동성시험을 진행하는 업체에 대한 편의상 제공되는 정보일 뿐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는 제도는 아니다"면서도 "행정심판 결과 지적된 내용을 반영해 관련 규정을 수정하고 조속한 시일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새로운 대조약을 지정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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