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수석의 보좌관 출신 김건훈(41) 씨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20일 열린 최순실 씨 등의 14차 공판에서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특검에 수첩 39권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이어 계속 부담되는 상황이었고, 특검에서도 이미 수첩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임의제출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제출한 11권에 이어 특검에도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39권을 제출했다. 이 수첩들은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의 핵심 증거가 됐다. 김 씨가 제출한 수첩에는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과정에서 나온 구체적인 대화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1, 2, 3차 독대가 이뤄지는 동안 삼성이 최 씨 측에 지속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안 전 수석의 변호인은 지난 6일 특검에 '임의제출 부동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안 전 수석 측은 "김 씨가 자유로운 의사로 증거를 제출한 게 맞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검 검사들이 안 전 수석에게 '김건훈을 구속시키겠다', '김건훈은 혼나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했고, 이런 점을 고려하면 김 씨 또한 구속영장청구 등의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특검은 안 전 수석이 수첩 내용을 본 뒤 사실이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진술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검은 의견서가 접수된 직후 안 전 수석을 불러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또 김 씨가 증거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증거은닉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근거로 이 부회장이 구속됐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삼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안 전 수석이 이야기한 부분이 조서에 남아있다면 진정한 의사로 인정되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변호사는 "만약에 조서가 있는데도 다툰다면 실질적인 진정 성립을 부정하려는건데, 특신 상태를 다툴 사안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신 상태'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라는 형사소송법 용어로 증거능력이 없는 전문증거에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요건을 말한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핵심 증거인 성 회장의 메모나 녹취록이 특신 상태에서 작성됐지만, 금품 전달자 윤모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검찰 특수본에서 확보한 11권의 업무수첩은 뇌물이 아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발부받은 영장으로 압수한 것이기 때문에 뇌물죄 증거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특검 관계자는 "증거능력을 부인할 때 내용이 위조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는게 아니면 절차를 문제삼아 법원에서 쉽게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