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분사해 설립하는 반도체 메모리 회사의 파트너 선택 작업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지분 참여 업체의 면면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들 기업 중에는 메모리 제조업체와 IT, 반도체 수탁업체(파운드리) 등 다양한데, 공통점은 모두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22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지분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들에 새로 설립되는 반도체 메모리 회사의 기업 가치를 2조 엔 이상으로 추정해 입찰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3월 말이던 매각 시기도 4월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지분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이 늘어나자 매각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현재까지 지분 참여를 희망한 기업은 도시바와 협력 관계에 있는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외에 IT 업계 거물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등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부터 관심을 보인 대만 혼하이정밀공업과 TSMC, 한국 SK하이닉스 등도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라면 메모리 업계의 미국·일본 연합으로는 최대이며, 한국 삼성전자에 대항하는 구도가 되는 것이라고 일간공업신문(닛칸코교신분)은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문에 “입찰 절차를 거쳐 파트너를 선정하겠지만 미국 기업들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며 “그 배경에는 삼성에 대항해야 한다는 공통적 테마가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나 PC에 탑재하는 반도체인 DRAM은 삼성이 세계 시장 점유율 약 45%로 압도적 선두다. 도시바의 주력인 NAND 플래시 메모리에서도 삼성은 점유율 약 30%로 1위이며, 그 뒤를 도시바(20%), WD(약 15%)가 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은 DRAM에서 삼성이 지배적 지위에 있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도시바 메모리 사업에 대한 출자는 DRAM 산업에서와 같은 일이 NAND 메모리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방어의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TSMC는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CPU를 위탁 생산하고 있는데,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면서 자사와 애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고 우려하고 있다. TSMC가 도시바의 반도체 메모리 지분 인수에 참여하려는 이유다.
당초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을 분사한 뒤 새로 설립하는 회사의 지분을 20%만 매각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계획을 다시 수정해 완전히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현시점에서는 다시 지분 50~60% 이상을 매각, 지분 3분의 1 이상은 보유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협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은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로 큰 수익원이다. 2016 회계연도 3분기(10~12월)에는 1100억 엔의 부문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나 미국 원전 사업에서 발생한 거액의 손실을 메꾸고자 당장 자금 마련이 시급한 도시바로서는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이에 입찰 조건을 수정, ‘50% 이상 출자’ 등의 내용을 추가해 21일에 해당 회사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사업에서 7125억 엔의 손실이 발생한 도시바는 자기자본이 작년 12월말 현재 1912억 엔이며, 내년 3월 말이면 1500억 엔 마이너스(-)가 된다. 도쿄증권거래소 기준으로는 1부 상장 기업이 회계연도말에 채무 초과 상태이면 2부로 강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