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지 약 한 달 반. 그동안 트럼프 만큼의 혼란과 불안을 전 세계에 퍼트린 테러리스트가 있었던가. 각국 정상과 기업 리더들은 이런 트럼프가 앞으로 야기할 혼란에 대한 해법을 찾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날카로운 통찰과 예측을 내놔도 무용지물이다. 트럼프의 행보는 전혀 점칠 수가 없고, 그가 내놓은 공약들이란 게 하나같이 추상적인데다 세부내용이 나온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처럼 암울한 트럼프의 시대를 ‘마이너스 섬 게임(Minus Sum Game)’의 시대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앞날이 불확실해도 현실을 도피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트럼프의 발언과 트윗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3월 6일자)에서 경고했다.
마이너스 섬 게임이란 ‘제로 섬(Zero Sum)’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 제로 섬 게임은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영(0)이 되는 게임으로, 무역수지를 예로 들면, 무역수지 흑자국이 있으면 반드시 동액의 적자국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마이너스섬 게임은 승자·패자 가릴 것 없이 플레이어 모두에 마이너스가 되는, 이득이 없는 게임이다. 예를 들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가 추진하는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언뜻 보면 미국에 유리한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는 상대국은 물론 미국에도 득이 될 게 없는 것이다.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 금지라든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 설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2010년 도입한 금융규제개혁법(도드-프랭크법) 철회 등이 대표적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자신 역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워진 경제적 혹은 안보에 관한 질서에 대해 일부 요소와 정책을 비판해왔다며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이런 조직과 네트워크를 세계에 더 공헌할 수 있게끔 개혁하려 했던 것이라며 트럼프처럼 철저하게 파괴하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스티글리츠는 우방국들과 힘을 합하면 미국에도 이익이 되는데, 트럼프는 세계와 마이너스 섬 게임을 하려 든다며 이 경우 미국도 패자가 된다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여러 번 반복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사는 과거 미국의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며 “가장 추악한 음모를 실행하려는 결의를 확인시키는 연설이었다”고 주장했다.
스티글리츠는 이처럼 트럼프가 국제 사회에서 ‘공공의 적’처럼 인식되면서 세계에는 새로운 연대감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 연대는 관용과 평등 같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기본적 가치 하에 형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로부터 정당한 법 절차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등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미국자유인권협회(ACLU)에는 최근 1개월간 기부금이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 전역에서는 기업 직원과 소비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경영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참석자 대부분이 트럼프의 차별과 보호무역주의는 안중에도 없이, 트럼프가 공약한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 등에 기대감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경영자들에게 용기가 부족하다는 점이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트럼프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어도 그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가는 트윗의 화살이 자신을 향할 수 있기 때문에 움츠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이처럼 공포감이 만연한 건 권위주의 정권의 특징이라며 “미국에서 이런 공포를 경험하는 건 자신이 성인이 된 이후 처음 겪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법에 의한 지배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지만 이젠 구체적인 문제가 됐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법에 의한 지배 하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아웃소싱과 해외 이전을 막고 싶은 경우, 적절한 인센티브를 마련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기업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먼저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규제를 도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트럼프처럼 특정 기업을 괴롭히거나 위협하고, 약자인 난민을 안보를 위협하는 이들로 규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계속되면 감각이 둔해져 나중에는 권력 남용에도 무뎌진다고 지적했다. 스티브 배넌 같은 극우 매체 대표를 백악관 수석전략가에 앉힌다거나 딸 사업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등의 일이 대표적이다. 스티글리츠는 이런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항상 경계심을 갖고 철저하게 저항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시대에 순응하려는 국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