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가려진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91일 만이다. 만약 파면 결정이 나온다면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 했던 재판은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파행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증인신청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갈등을 봉합해 위기를 넘겼다.
헌법재판소는 국회로부터 사건을 접수한 지 2주 정도가 지난해 12월 22일 첫 준비기일을 열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준비절차 없이 바로 변론을 열었지만, 이번 사건은 탄핵소추 사유가 13개에 달하고 관련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돼 쟁점 정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3차례의 준비기일을 통해 13개의 탄핵사유는 5가지로 압축됐고, 국회 탄핵소추 의결 과정도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1월부터는 본격적인 변론이 열렸다. 3일부터 25일까지 9차례의 변론이 열렸고, ‘비선실세’ 최순실(61) 씨와 청와대 안종범(58)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8) 전 부속비서관 등 주요 증인이 잇따라 소환돼 심판정에 섰다.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을 6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내리 신문하는 등 강행군을 하며 신속한 결정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던 재판은 25일 9차 변론기일에서 박한철 소장의 발언으로 위기를 맞았다. 1월31일 퇴임을 앞뒀던 박 소장은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고, 박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권성동 의원이 방송 인터뷰에서 3월 9일 선고를 예상한 부분을 문제삼아 헌재-국회 교감설을 제기하는가 하면 ‘중대결심’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리인단 총사퇴 의사도 내비쳤다.
박 대통령 측의 반발은 무더기 증인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8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되던 헌재는 2월 7일 열린 11차 변론기일에서 이미 증인신문을 했던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수석은 물론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방기선 전 청와대 행정관 등 대통령 측이 신청한 8명의 증인을 받아줬다. 이 때문에 추가로 일정이 잡히면서 ‘2월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24일로 예정됐던 최종변론 기일도 27일로 늦춰졌다.
박 대통령 측이 부른 증인들이 제대로 출석하지 않고, 추가로 선임한 대리인들이 초반에 거론하지 않았던 국회 소추 의결 절차를 문제삼기 시작하는 등 재판 지연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지만, 헌재는 1주일에 2~3차례 심리를 열어 27일 17차 변론을 끝으로 사실상 법정 공방을 마무리지었다. 박 대통령이 심판정에 나설 것인지도 관심을 끌었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2월28일부터 평의를 시작한 재판관들은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를 토대로 쟁점 토론을 한 뒤 3월 8일 재판관 회의에서 10일 선고일정을 확정했고, 마침내 오늘 역사에 남을 긴 여정을 마무리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