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플랫폼 구축을 가장 중요시해”
손정의가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지난해 영국 반도체 칩 설계업체 ARM은 무려 3조3000억 엔(약 33조 원)에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이면에는 30년 전 받았던 굴욕감과 함께 소프트뱅크를 플랫폼 기업으로 유지한다는 손정의의 경영철학이 숨어 있다고 17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 ARM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ARM은 어떤 기업이기에 손정의 회장이 과감하게 베팅했나.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을 배출한 영국 남부 학문의 도시 케임브리지에 ARM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에나 있는 지방 중소기업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 실체는 명문 케임브리지대학 등과의 네트워크를 살린 두뇌 집단이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90% 이상이 바로 ARM이 설계한 회로를 쓰고 있다. 1990년 경영 부진에 시달렸던 한 지방 컴퓨터 업체에서 뛰쳐나온 12명의 엔지니어가 창업했다. 그 중 한 명이 ARM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마이크 뮬러다. 그는 ARM이 반도체칩 설계라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돈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12명이 모은 자금은 100만 파운드에 불과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투자 경쟁을 따라잡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래서 개발에 집중해 설계도면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로 승부를 걸게 됐다.
한편 ARM의 운명을 가른 중요한 결정이 또 이뤄졌다. 당시에는 초창기였던 모바일 기기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뮬러 CTO는 “PC는 이미 인텔이 거인이었다”며 “우리가 어떻게 해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로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당시 자사의 개인용 휴대 단말기 ‘뉴턴’에 ARM 설계를 채용했지만 뉴턴은 애플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실패작이었다. ARM도 근근히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ARM은 여전히 모바일을 고집했다. 1997년 핀란드의 노키아가 휴대폰에 ARM 기술을 적용하면서 회사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0년 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시대의 막이 열렸다. 그리고 ARM은 모바일 기기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됐다. 이제 모든 사물이 인터넷과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시작되면서 ARM은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손정의가 록펠러와 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손정의는 “반도체 칩이 있는 곳에 ARM이 있다”며 “ARM은 바로 플랫폼을 바탕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다. 20년 후에는 1조 개의 팔(ARM)을 전 세계에 뿌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손정의의 플랫폼에 대한 집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20세기 석유왕 존 록펠러와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를 종종 플랫폼 구축 사례로 들고 있다. 록펠러는 포드자동차의 등장으로 자동차 산업이 부흥하기 50년 전부터 석유의 세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간파해 차례 차례로 유전을 사들이며 거대 기업 스탠더드오일을 만들었다.
노부나가는 총을 중심으로 전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손정의가 주목한 것은 총보다 오히려 화약이었다. 당시 일본은 화약 연료인 질산칼륨을 거의 전부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노부나가는 차에 심취해 센노 리큐 등 다도 명인들과 가까이 했다. 한편 이들 다도 명인은 당시 일본 최대 무역항이었던 사카이에 거점을 둔 무역상이기도 했다. 즉 노부나가는 단순히 차를 즐기기 위해 이들을 아낀 것이 아니라 화약도 확보하려 한 것이다. 손정의는 화약이라는 플랫폼을 노부나가가 확보했기 때문에 전국시대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 30년 전의 굴욕은 무엇이었나= 지인들은 손정의가 20대 중반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손정의도 30년 전에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손정의는 1986년 전화를 할 때 자동으로 싼 회선을 선택할 수 있는 통신장비인 ‘NCCㆍBOX’를 개발했다. 당시 그는 이 장비를 무료로 소비자에게 배포해 당시 유선통신을 지배하고 있던 NTT의 독점을 무너뜨리는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만난 것이 제2전신전화(현 KDDI의 전신)의 이나모리 가즈오 설립자였다. 이나모리는 이 장비를 50만 개 구매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자사에만 독점으로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플랫폼을 세우려는 손정의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 “시대는 변해도 나는 항상 도박판의 주인 될 것”= 이나모리와의 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 손정의는 자신의 동료였던 오오쿠보 히데오(현 포바루 회장)에게 “지켜봐줘. 언젠가 나는 도박판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박판의 주인은 게임 규칙의 지배자, 즉 플랫폼을 구축한 사람이다. 그리고 15년 후 손정의는 ADSL 광대역 사업에 뛰어든다. 인터넷의 플랫폼인 통신회선 잡기에 나선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른바 ‘도박판의 주인’ 형태도 바뀌었다. 소프트뱅크는 2006년 2조 엔의 거액을 들여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해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바일 인터넷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손정의는 본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네트워크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 시대 플랫폼은 바로 반도체라고 인식한 것이다.
1981년 손정의가 단 2명으로 시작한 소프트뱅크는 ‘정보혁명’이라는 비전을 내걸면서도 본업을 바꿔왔다.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도매사업부터 시작했지만 때때로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회사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 이면에는 항상 플랫폼을 목표로 하는 손 회장의 야망이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