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간여에 걸쳐 장시간 조사를 받은 박근혜(65) 전 대통령은 자신의 운명을 검찰에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박 전 대통령 개인은 물론, 향후 대선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전날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강제 출연 혐의, 삼성과의 부정한 거래 내역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개입한 혐의와 청와대 기밀문서 유출, 민간기업 경영·인사권 개입 등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웅재(47·사법연수원 28기) 형사8부장검사가 14시간의 조사시간 중 11시간을 담당한 것은 향후 검찰이 집중할 혐의와 관련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지난해 11월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진 후 한 부장검사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출연금 모금 부분을 전담 수사했다.
검찰은 출연금을 내도록 한 박 전 대통령의 행위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판단했지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제3자 뇌물수수로 결론냈다. 검찰이 어느 결론으로 가든 논리 구성에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만약 검찰이 기존 혐의를 변경한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향후 대기업 수사 폭도 상당 부분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7시간여에 걸쳐 피의자 신문조서를 열람했다.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반적으로 부인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통상 조서 열람에 걸리는 시간은 1~3시간 정도다. 박 전 대통령과 동석한 유영하(55·24기) 변호사는 조사를 마친 직후 “검토할 내용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렸다”며 “조사를 꼼꼼하게 검토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관건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공모관계인 최순실(61) 씨와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의 대질신문도 추진했지만, 둘 다 출석요구에 불응하면서 무산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특검이 적용한 뇌물수수 혐의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이번 사태의 ‘몸통’격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법원이 검찰의 청구를 받아들여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다면, 곧 펼쳐질 대선정국에도 지지층 결집 등의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도 남기게 된다.
검찰은 일찌감치 박 전 대통령을 긴급체포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낼 방침을 정하고 조사를 벌였다. 조사 도중 긴급체포할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검찰로서도 박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할지를 놓고 고민할 시간에 쫓기게 된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