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이후 인사시스템 사실상 먹통… 퇴직 2주 만에 산하기관 대표이사 오르기도
공공기관장 자리가 또다시 퇴직관료 챙겨주는 자리로 전락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관피아 척결에 나섰던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의 파면으로 국정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정권 말 낙하산 인사가 급증하고 있다.
3일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 따르면 총수입액이 1000억 원을 넘고 직원수가 500명이 넘는 공공기관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 → 운영위원회의 심의ㆍ의결 → 주무기관 장의 제청 → 대통령이 임명의 절차를 거친다. 예외적으로 시행령에서 이 기준에 미달하는 일부 기관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통상 대통령은 후보군 3명 중 1명을 낙점한다. 문제는 형식적으로 임추위가 후보를 추천하는 모양새이지만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곳에서 압력을 넣거나 후보자를 뒤집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권이 힘이 있을 때는 주로 청와대발 낙하산이 많아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공공기관장에 선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6개월간 취임하거나 내정된 공공기관장을 분석해 보면, 각 부처 고위관료들이 대부분 산하기관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급증했다. 정권 말이고 대통령 공백 속에서 선배들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이승호 전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은 2월 27일 퇴임하고 2주 만에 수서고속철도를 운영하는 SR 대표이사로 취임해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사장 선임을 위한 모집공고 절차도 없이 선임됐다.
최근 인천항만공사 사장에 취임한 남봉현 사장은 행정고시 29회로 기획재정부를 거쳐 해수부 기조실장을 2년 가까이 지냈다. 인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세월호 참사로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됐지만 공모를 앞두고 열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 심사에서 윤리위는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면서도 남 전 실장이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인천 해운항만업계는 남 사장에 대해 기재부 출신으로 해운항만행정 경험이 전혀 없다며 반발하자, 해수부는 남 사장이 인천 부평고 출신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영훈 이사장은 해수부 수산정책실장 출신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대형 공공기관 사장은 모두 과거 지식경제부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이다. 작년 11월 한수원 사장에 이관섭 전 산업부 차관이 선임됐다.
대한석탄공사, 한국석유관리원, 남동발전, 서부발전, 한전KPS 등도 최근 6개월 새 사장이 선임됐다. 모두 내부 출신이다. 장재원 남동발전 사장은 한국전력 전력계통본부장 출신이며, 정하황 서부발전 사장은 한국수력원자력 기획본부장 출신이다. 이들 기관은 전력기관의 경우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내부 출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와 관련된 협회와 기관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아 장관도 다 알지 못할 것”이라며 “통상 산업부 차관을 지내면 공기업 CEO를 두 번 역임하는 ‘회전문 인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장도 고위 관료들이 연이어 내려갔다. 여인홍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은 농림부 차관을 지냈고 오경태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원장은 차관보를 지냈다.
이양호 한국마사회 회장은 행시 26회로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으며 농촌진흥청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마사회장에 선임됐다. 정승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행시 23회로 농림부 2차관,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 등을 역임했다. 김윤종 농업정책보험금융원장도 행시 34기로 농림부 출신이다.
이재흥 한국고용정보원장, 심경우 한국폴리텍Ⅰ대학장, 최영현 보건복지인력개발원장은 고용부, 이희철 국립생태원장, 남광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환경부 고위관료 출신이다.
정부 관계자는 “억대 연봉에 입각 후보로도 거론되는 공공기관장은 고위관료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라며 “청와대 낙점 인사가 사라진 상황에서 각 부처가 선배들 챙겨주기에 나서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