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정상 회담에서 통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창구를 확보했다. 북핵 등 안보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공동 기자회견과 성명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대 중국 무역적자 감축을 위한 100일 계획과 두 정상이 참여하는 새로운 대화의 틀을 마련키로 한 건 이번 회담의 유일한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요구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관계’에까지 길을 연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시 주석과의 회담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펑리위안 여사를 맞이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상당한 우호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면서도 “무역 문제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트윗했다. 이는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해 미중 양국이 합의한 ‘100일 계획’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시 주석이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중국 측을 견제한 모습이다.
트럼프는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상호 이익이 되는 시장 개방”을 여러 번 강조했다. 100일 계획에 대해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여러모로 볼 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100일 계획”이라며 “양국이 친밀한 관계를 쌓는 데 매우 매우 중요한 상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의 과정에서 중간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며 일정 기간 안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도록 중국 측에 요구할 뜻을 나타냈다. 그는 또한 “중국이 무역 불균형 축소에 관심을 보인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며 중국과의 협력 관계 구축에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면서 “대중국 수출을 늘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런 100일 계획에 시 주석이 합의함으로써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 관계 시정을 향해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중 대화의 새로운 틀은 트럼프에게는 시 주석에게 문제 해결을 강요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전 정권에서는 매년 ‘미 · 중 전략 · 경제 대화’를 실시했지만 큰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100일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양국 경제 실무팀의 후속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미국의 대 중국 수출을 늘리고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의 시나리오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높은 세금과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유보하면서 대신에 중국 시장 개방을 강요, 미국의 대중 수출과 투자를 늘린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철강 등의 과잉 생산과 지적 재산권 침해, 투자 규제,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의 강요 등 미국 산업계에서 불만이 분출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반면 안정적인 성장 유지를 위해 내수가 주도하는 경제 구조 전환을 목표로 해온 중국은 미국의 제품과 자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미국에서의 수입과 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이 경제 개혁을 진행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트럼프 정권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력이 약해진 만큼 트럼프의 의도대로 상황이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이번 회담은 서로의 체면을 살려준 형식적인 합의로, 동상이몽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BNP 파리바 증권의 고노 류타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 중 경제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극단적으로 대립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양국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협력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국산 농산물과 항공기 수입을 늘리는 등 중국 정부가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움직임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