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95) 롯데 총괄회장과 그의 셋째부인 서미경(58) 씨가 첫 재판에 나서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김상동 부장판사)는 1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신 총괄회장과 서 씨, 신영자(75)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첫 공판을 열었다.
신 총괄회장 측은 "지난해 검찰 방문조사 당시 신 총괄회장이 '나는 탈세를 전혀 하지 않는다. 신문에 나고 창피해진다. 직원들에게 절세는 하라고 했지만 탈세를 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며 조세포탈의 지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 씨와 신 이사장도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 씨 측은 "세금문제는 법적으로 완전히 문제없도록 처리됐을 거라는 소박한 인식만 갖고 있었다"며 "조세포탈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신 이사장 측도 "그룹 정책본부 요청에 따라 서명한 게 전부"라고 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주장도 폈다.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게 지난해 9월이므로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는 취지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재판이 시작하고 10여분 뒤에 법정에 나왔다. 장남인 신동주(63)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피고인석까지 휠체어를 밀었다. 검은색 외투를 입은 신 총괄회장은 무릎까지 파란색 담요를 덮고 오른손에는 빨간 지팡이를 들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확인하는 재판장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변호인이 대신 말하기도 했다. 재판장이 수차례 ‘본적이 어디냐’고 묻자 다른 주소를 이야기하는 등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재판부는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공소사실에 대한 변호인과 검찰의 진술이 끝나자마자 신 총괄회장을 법정 밖으로 내보냈다.
변호인은 이날 신 총괄회장의 경영원칙을 언급하기도 했다. 롯데를 우리나라 기업으로 운영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만큼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양도를 통한 탈세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신 총괄회장 측은 한국에서 번 돈은 외국으로 빼내지 않는다는 이른바 '기업보국원칙'에 따라 기업을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2011년부터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며 "옛날부터 신 총괄회장은 '자기는 한국에서 죽겠다. 일본에서 죽으면 일본에 상속세를 내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또 "신 총괄회장은 그동안 비상장주의 원칙을 지켜왔다"며 "일본 정부가 롯데 상장을 요구했으나 상장은 롯데가 일본 기업이 되는 거라 허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었다"고 언급했다.
신 총괄회장은 2005~2006년 차명으로 보유하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서 씨 모녀와 신 이사장이 지배하는 해외 특수목적법인(SPC)에 매매하는 방식으로 증여세 납부를 피한 혐의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