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때 우산 뺏는 은행들…견실한 기업까지 자금난”

입력 2017-05-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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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통영지역 조선기자재 업체의 하소연…“중진공 정책자금으로 불황탈출”·“감원 힘든데 대출금 상환 압박”

▲지난달 27일 경남 거제시 하청면에 위치한 칸정공 본사. 제작 중인 알루미늄 소재 해양 구조물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알루미늄 기술로 만든 해양 구조물을 설명하고 있는 박기태 대표. 사진=전효점 기자 gradually@

“경남 거제의 경기는 언론보도보다 더 어렵습니다. 호황일 때 투자를 너무 많이 해서 파산하는 경우도 많고 임금을 못 줘서 해고하는 감원 바람도 불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대출 회수와 금리 인상으로 기업을 옥죄는 것이 현실입니다.”(박기태 칸정공 대표)

조선업종 무차별 여신 회수를 금지하는 금융당국의 연이은 당부에도 시중은행이 해운업과 조선업을 취약업종으로 분류해 대출을 축소하거나 회수해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경남 거제 지역의 건실한 조선해운 협력사들도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황에도 건실한 지표를 기록한 기업이 조선업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조달받지 못함에 따라 중소기업진흥공단 정책자금이나 해외 은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등 대안 마련에 바삐 움직이고 있다.

박기태 칸정공 대표는 지난달 27일 기자와 만나 “회사가 신용등급이 견실하고 부동산 담보도 있지만, 조선기자재업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출이 거부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자금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시중은행들은 기존 대출을 회수하고 금리를 인상했다. 작년부터는 신규 대출도 전면 중단했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대신 중진공 정책자금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칸정공은 경남 거제시 하청면에서 해양플랜트와 조선기자재를 생산하는 조선업임에도 불황을 역행하고 있는, 보기 드문 기업 중 하나다. 회사는 작년 3차례에 걸쳐 약 6억5000만 원의 중진공 정책자금을 대출받고, 이를 준비 중인 재생에너지와 알루미늄 신사업에 성공적으로 투자해 확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지난달 21일에도 시중은행장들을 만나 조선업종 여신을 무차별 회수하지 말라고 한 주문이 현실에서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고 거제ㆍ통영 지역 조선 관련 협력업체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통영에 있는 청암산업의 정연면 대표는 “이달부터는 직원을 10명 이상 줄여서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인건비 지출을 최소화할 계획이나 더 이상의 감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출금 상환 등이 큰 압박이 되고 있다”면서 “업황 개선이 기대되는 내년까지만이라도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선별해 은행 이자를 낮추고 이자 납부나 대출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조처 등이 필요하다.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배짱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 올 때는 우산을, 햇볕 뜨거울 땐 양산을 씌워주는 금융권이 돼 달라”고 호소했다.

김정원 중소기업진흥공단 경남서부지부장은 “특히 지난해 중진공의 조선기자재 업종의 자금 지원 요청이 급격히 늘어났다. 서부지부 기준 2015년 전체 지원 건수의 6% 정도가 조선업종이었다면 작년에는 25%까지 올라왔다”며 “칸정공처럼 지표가 양호한 기업들도 다수 있는데, 호황이었을 때에 자금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금융권이 2015년부터 대출에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 기업들이 지자체도 가고 우리 쪽도 많이 찾아온 걸로 안다”고 밝혔다.

중진공은 작년부터 조선업 피해 기업 749곳에 대해 163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집행했으며 올해도 부산, 경남, 전남 등 5개 조선업 밀집지역에 긴급경영안정자금 등 정책자금 5400억 원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은행권이 자금 조달에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정책 기관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지만 잘못하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며 “은행 부실만을 생각해 대출을 무작정 회수하다 보면 업종 침체가 더 악화하고 결국 부메랑은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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