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총선을 닷새 앞든 영국에서 올들어 세 번째 테러가 일어났다. 이는 테러 대응책을 이유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지난달 22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22명이 숨진 지 불과 12일 만의 일이었다. 용의자 3명은 경찰에 사살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테러가 발생한 직후 트위터에 반이민 행정명령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트럼프는 “우리는 현명해야 하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법원은 우리의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에게는 추가적인 안전정책으로 여행금지명령(반이민 행정명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테러를 수사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으나 테러 사건을 정책에 끌어들인다는 비난 여론이 조성됐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세실리아 왕 부국장은 “트럼프가 불법적인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테러를 이용할 때 우리는 격분할 필요가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비판했다.
트럼프는 10시간 뒤 다시 트윗을 올렸는데 이번에는 사디크 칸 런던시장을 비난해 논란을 빚었다. 트럼프는 “테러로 최소 7명이 숨지고 48명이 부상했는데 런던 시장은 ‘놀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칸 시장이 테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또 “우리는 정치적으로 옳게 행동하려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관계다. 칸 시장은 이슬람교도로서 트럼프의 노골적인 반이슬람 차별 기조를 비판했고 지난 1월에는 트럼프의 영국 방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또 지난 3월에 런던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승용차 테러가 일어났을 때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칸 시장의 인터뷰 기사를 링크한 뒤 “장난치냐”고 트위터에 올렸다. 당시 트럼프 주니어는 인터뷰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섣부르게 글을 올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번 트럼프의 트윗도 칸 시장의 일부 발언을 발췌해 왜곡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칸 시장은 앞서 “런던 시민들은 앞으로 경찰의 존재감을 더 느낄 것”이라며 “이에 대해 놀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모든 방법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칸 시장의 인터뷰는 지극히 평이하고 원론적인 이야기였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의 일부만 따서 자극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칸 시장은 이번 트럼프의 트윗에 침묵을 지켰다. 칸 시장의 대변인은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맥락을 곡해했다”며 “트럼프의 트윗에 대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일축했다. 또 “현재 칸 시장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응하고 런던 시민과 여행자들에게 안도감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분주하다”고 덧붙였다.
2주 만에 테러가 다시 발생한 영국에서 미국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유사한 조치를 도입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그동안 극단주의에 너무 관대했다”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칸 시장이 트럼프의 트윗에 무반응으로 일관한 것도 안보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에 동의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국외에서 영국 테러 사태와 국내에서 ‘러시아 내통설’로 시끄러운 와중에도 이틀 연속 골프장으로 향했다. 워싱턴이그제미너에 따르면 트럼프는 버지니아 주 스털링에 있는 본인 소유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을 찾아 3, 4일 이틀간 여유롭게 라운딩을 즐겼다. 트럼프의 골프장 행은 올 들어서만 23번째다. 트럼프는 지난 2014년 10월 트위터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잦은 골프 라운딩을 비판했다. 그는 당시 “미국이 직면한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고 오바마는 골프를 치고 있다”며 “그는 현실과 분리된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트럼프 자신은 국내외에서 이슈가 쏟아지는 와중에 골프장 행을 하고 있어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