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순환출자 해소는 어떻게?
하지만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현재의 지배구조는 삼성의 고민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새 정부가 순환출자ㆍ지주회사ㆍ금산분리 규제 강화를 재벌개혁과 관련한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삼성에도 변화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순환출자 모두 해소할 것”= 실제로 삼성은 당장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부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명진 삼성전자 전무는 최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순환출자는 여러 계열회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사항으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시장 영향을 최소화할 방법과 시점을 고려해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한 중간금융지주회사 추진에 제동이 걸린데 이어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도 중단되면서 삼성그룹이 어떤 방식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나설지 주목된다.
순환출자란 ‘A사→B사→C사→A사’와 같이 원 모양(환상형)으로 순환하며 서로를 지배하는 모습을 띈다. 기업의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데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총 7개다. 7개 고리의 한가운데는 모두 삼성물산이 있다.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7개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지난 1분기 기준 17.08%의 지분을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건희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 등 오너일가를 합하면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30.86% 규모다.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는 삼성화재, 삼성SDI, 삼성전기 등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오너 일가나 이들 세 개 회사가 아닌 다른 계열사가 매입하면 해소된다. 순환출자는 삼성물산으로 시작해 삼성물산으로 끝나는 구조인데 삼성화재, 삼성SDI, 삼성전기가 가진 삼성물산 지분을 다른 곳으로 넘기면 맨 마지막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다.
이들 회사가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약 6.1%(삼성전기=2.6%, 삼성SDI=2.1%, 삼성화재:1.4%)로 현재 가치는 약 1조6000억 원 규모다. 삼성의 계열사 중에서 삼성물산 주식을 이 정도로 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당장 순환출자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 한 관계자는 “순환출자 구조는 언제든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어서 이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향후 삼성전자가 순환출자 해소 이후 점진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정성엽 연구위원은 “삼성그룹은 7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있다”며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고리가 그 핵심이지만, 강화된 금산분리와 순환출자의 점진적 해소는 삼성전자에 대한 그룹 지배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삼성전자 지분은 18.45%로 많지 않고, 총수일가 지분은 이 중에서 이 부회장의 0.6%를 포함해 4.91%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 7.9%에 의존해왔지만, 이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순환출자 쟁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과정에서도 순활출자 관련 쟁점이 불거지고 있다. 공정위는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고 판단, 이를 해소하기 위한 주식처분명령을 내렸다.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처분하는 방식이다. 삼성그룹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은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금지한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 적용되는 사례였다. 이에 대해 특검은 공정위가 삼성SDI에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1000만주 처분 결정을 내렸다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500만주로 줄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된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어떠한 특혜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 측은 “공정위는 외부 전문가 등이 포함된 전원회의를 거쳐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며, 삼성은 자발적으로 주식을 처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으로 발생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주식 처분 규모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가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인민호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은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대한 24차 공판에서 “청와대가 공정위에 어떻게 하라고 세세하게 지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공정위 최고 수장이었던 정재찬 전 위원장도 최근 법정에서 매각 주식수 검토 및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의 외압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와 공정위 고위관계자부터 실무진까지 모두 동일한 증언이 나오면서 특검의 혐의 입증이 무리수였다는 것이 또다시 증명된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