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는 진짜 인간 일자리를 위협할까…글로벌 중앙은행장들 ‘로보칼립스’ 논쟁 후끈

입력 2017-06-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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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가속화에도 임금과 물가 오르지 않는 현상에 고민 깊어져…그 근원에 AI·로봇 통한 자동화 있어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번 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포럼을 개최한 가운데 27일(현지시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연설하고 있다. 출처 ECB 웹사이트

자동화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로봇이 모든 인간의 노동을 처리하게 되는 이른바 ‘로보칼립스(Robocalypse·로봇으로 인한 종말)’가 더는 SF 소설이나 영화, 게임의 주제만이 아니게 됐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수장들이 이번 주 유럽중앙은행(ECB) 주재로 포르투갈에서 열린 포럼에서 로보칼립스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고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포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방향이나 인플레이션 전망에 쏠렸지만 정작 중앙은행 수장들은 로봇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으로부터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압도적인 기술적 변화 가능성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이에 대해 의견을 펼쳤다고 NYT는 전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제임스 불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중앙은행 고위 관리들과 경제학자들이 집결한 지난 27일 데이비드 오서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로보칼립스가 정말로 올 것인가’라고 사람들이 물어보는 시대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화두를 던졌다. 그는 이번 포럼에 모인 참가자들을 위해 로보칼립스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번 모임은 10년 전보다 글로벌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론이 훨씬 커진 가운데 이뤄졌다. 드라기 총재는 “현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기회복이 강화할 것이라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이런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딥러닝 등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AI에 기반한 컴퓨터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

과거에 기술적인 진보는 일시적인 혼란을 야기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범주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농기계가 농장 노동자들을 몰아냈지만 근로자들은 더 나은 보수를 받는 직장을 찾을 수 있었으며 오늘날 그들의 증손자 시대에는 게임 개발 등 새 일자리가 생겼다.

그러나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법률사무소 직원, 회계사, 투자 매니저 등 생산 자동화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광범위한 범위의 일자리가 위기에 놓이게 됐다. 많은 사람이 트랙터 발명 이후 쓸모없게 된 쟁기를 끄는 말과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고 NYT는 경고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핀란드 공장에서 로봇들이 생산에 열중하고 있다. 블룸버그

베노이트 쿠에르 ECB 정책위원은 “포럼에서 로보칼립스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특히 ECB는 실업률이 떨어지는 등 경제성장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는 현상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 이유로 첨단 컴퓨터들이 많은 작업을 수행하면서 그 보상이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돌아간다는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가 로보칼립스가 임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분명히 일자리 중 일부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지만 자동화로 생산성이 더욱 좋아지면 더 많은 소비가 가능하도록 많은 제품 가격이 싸질 것이며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800년대 말 미국 근로자의 40%가 농장에서 일했다며 오늘날 이런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미국과 유럽, 일본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이 혁신적인 제품과 설비 등에 투자하는 대신 주주 뱃속 채우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자동화보다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반론들에도 선진국의 근로자와 중산층 사이에서 기술 변화가 일으키는 혁신에 대한 회의론이 이미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로보칼립스에 대한 불안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 1년 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결과 등 포퓰리즘 물결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NYT는 지적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이번 포럼에서 최근 미국 설문조사에서 자국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응답보다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답변이 두 배 많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결과 우리는 경제에 대해 ‘디스토피아(어두운 미래상)’적인 견해를 가진 후보(트럼프)를 대통령으로 갖게 됐다”고 꼬집었다.

오서 교수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지에 대해 지금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르다”며 “그러나 로보칼립스가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더라도 미래에는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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