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사랑방 문화가 이어지는 술집이 있었으면

입력 2017-07-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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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가까이 지내는 고등학교 선생님은 학교나 집 근처에 가볍게 한잔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는 괜찮은 술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삼겹살집, 횟집, 한정식집 등은 가볍게 한잔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허리띠 풀고 퍼질러 앉아 과식하고 과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건강과 돈, 다음 날 일 등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자리이다.

외국에는 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형태의 술집이 많다. 영국의 펍, 프랑스의 카페와 비스트로, 독일의 브로이하우스, 일본의 이자카야 등이다. 한국에도 이런 술집들이 변형된 형태로 많이 들어와 있다. 특히 최근 많이 생겨난 이자카야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자카야에서 사케와 일본 맥주, 일본 소주를 마실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는 쌀이 남아 논을 없애고 있는데, 일본 쌀과 농산물을 소비해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호프를 파는 맥줏집에서도 간단히 한잔할 수 있다. 호프(Hof)는 독일어로 ‘농장’, ‘마당’, ‘궁정’을 뜻하는 말로 술집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아마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궁정 양조장을 뜻하는 유명 맥줏집인 ‘호프 브로이하우스(Hof Bräuhaus)’에서 유래했을지 모른다. 어원이 어찌되었든 한국의 호프집은 술과 안주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고 식사 장소로는 마땅치 않다. 그리고 호프집은 여럿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아 요즘 늘고 있는 ‘혼술족’이 가기엔 좀 어색한 곳이다.

최근 수제 맥주가 유행하면서 맥줏집의 형태와 술의 종류가 좀 다양해진 것은 좋은 일이다. 수제 맥주 덕에 맥주의 맛도 좋아지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그러나 수제 맥주와 공장 맥주 모두 맥아, 호프, 효모 등 원재료는 거의 100% 수입산이다. 물만 국산인 셈이다. 우리 농업에 대한 기여도는 국산 맥주도, 급증하고 있는 수입 맥주와 별 차이가 없다.

한국에도 우리 농산물로 만든 맛있는 술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분위기 괜찮은 술집이 있어야 한다.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간단히 한두 잔 마시든 좀 길게 병 단위로 마시든 불편하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사무실이나 집 근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세상 사는 이야기, 주변 사람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우리 조상들의 사랑방 문화가 술집에 녹아 들어간 형태였으면 좋겠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업무에 몰두하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면 두뇌의 회로가 계속 사무실의 업무에 맞춰 있어 집에서의 생활이 편하지 않을 수 있다. 사무실과 집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곳이 있으면 좋을 듯하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세상 일에 대한 뒷담화도 가끔은 필요하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현생 인류는 뒷담화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한국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서 여론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사라졌다. 기계음처럼 시끄럽고 익명성 속에서 쉽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SNS에 의한 여론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커피 전문점에서 사람을 만나고 개인적인 일을 한다. 커피전문점이 새로운 문화 공간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커피전문점은 술집에서의 뜨거움과 솔직함이 적다. 뜨거움과 솔직함이 부족하면 만들어진 뒷담화나 여론도 깊지 않다.

우리 농산물로 만든 우리 술과 조상들의 사랑방 문화가 어우러진 술집이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술집이 많아지면 한국 농업이 조금은 좋아지고 사회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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