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로 되짚어본 인간·로봇의 시대별 공존 방법
영화 ‘로봇, 소리’를 연출하며 충무로에 다시 한번 이름을 알린 이호재 감독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현실을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풀어냈다. 그의 영화 속 인공위성 로봇 ‘소리’는 인간의 감성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주인공(이성민 분)과 함께 그의 딸을 찾는 여정을 함께한다.
6일 개최된 ‘WIN2017’-로봇과 인간의 공존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나선 이 감독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바라본 로봇의 존재를 되짚어가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로봇과 인간의 공존 시대의 자세를 설파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다양한 미래학자와 인문학자들이 미래를 예견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갖가지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삶에 대한 자세와 인식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이 감독은 “공상과학(SF) 영화는 재미는 미래에 대해 얼마만큼 정확하게 예측했느냐가 아니다. 그 영화를 만들 당시의 시대 상황이 얼마만큼 반영됐는지가 관건”이라며 주제를 소개했다. 그는 “SF 영화는 그래서 최신작과 함께 예전 작품을 보는 것도 재밌다. 그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되짚어보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04년에 달 탐사를 주제로 한 SF영화를 예로 들었다. 당시에는 달까지 가기 위해 우주선이 아닌 긴 대포에 사람을 넣고 하늘을 향해 쏘는 방식이 영화에 등장했다. 그렇게 하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믿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지구로 되돌아오는 방법은 더 독특했다.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그냥 절벽에서 떨어지면 됐다. 그렇게 떨어지면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쉽게 귀환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했던 시대였다. 당시 기준으로 꽤 믿을 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바탕이 된 셈이다. 1969년 인류가 최초로 달 탐사에 성공하기 60여 년 전 무성영화였다. 당시 기준으로 SF라는 장르 자체가 획기적인 시각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인간과 로봇이 결합한 영화 ‘로보캅’이 등장했다. 싸늘한 기계로 둘러싸인 휴머노이드 로봇은 결국 자신의 감성을 앞세워 스스로 인간임을 주장하며 영화를 마친다. 팔다리는 기계지만 이를 지배하는 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인간과 로봇의 공존에서 인간은 여전히 우위를 주장했던 셈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SF영화 속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사람과 감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영화 ‘HER’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인공지능 ‘사만다’와 통화하며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만다는 이미 수천여 명의 이용자들과 깊은 감정을 나누는 인공지능에 불과했다.
이 감독은 결국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명민한 인공지능, 더 사람과 닮아 있는 로봇이 등장하겠지만, “인간과 로봇의 영역을 구분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는 반드시 다가오고 어쩌면 이미 우리 옆에 다가와 있는지 모른다”며 “그 미래에 누군가는 지배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지배를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래를 독점하려거나 그 미래가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다”며 로봇과 인간이 원활하게 공존하는 시대를 위한 다양한 지혜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