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세계적으로도 미국의 브로드웨이, 영국의 웨스트엔드, 일본 사계극단의 13개 전용 공연장, 호주 및 캐나다의 뮤지컬 에이전트 비즈니스 환경 등 극소수를 뮤지컬 시장으로 꼽는다. 최근엔 서울이 뮤지컬 신진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뮤지컬 전용 대공연장 증가, 해외 유명 뮤지컬의 실시간 라이선스 공연을 비롯해 제작비 100억 원 규모의 뮤지컬이나 오픈 런 공연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 250만 명의 대구광역시가 국제적인 뮤지컬 축제를 10년 이상 꾸준히 해 온 사실은 놀랍다.
나는 2년 임기로 지난 8회와 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을 수행하며 그 ‘불가사의’를 몸소 체험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18일간 대구 전역에서 20편이 넘는 뮤지컬을 공연하고 10개 이상의 부대행사에 대규모 개막 콘서트와 폐막 어워즈까지 여러 장르의 축제를 한꺼번에 다 치러낸 것이다. 공연기획자로서 평생의 노하우를 쏟아 부었던 파란만장한 축제 기획은 신나는 도전이었다.
그런데 주최가 대구광역시라는 것이 문제였다. 해외 공연단체들은 인천공항을 거쳐 대구로 와야 했고 국내 공연단체와 뮤지컬 전문가들도 대구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경비와 관리도 문제였지만 서울의 뮤지컬 시장을 축소해서 대구에 옮겨 놓다시피 해야 했다. 2년간 아시아의 대표적인 뮤지컬 아트마켓 대구의 기틀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나 자신도 결국 서울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희망적인 비전은 남겨 놓았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뮤지컬 전문 축제이자 뮤지컬 아트마켓이 되리라는 확신인데, 몇 가지 확실한 단서들이 있다. 그중 으뜸은 2년간 내 고군분투의 원동력인 대구 시민들이다.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대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대구 관객의 호응과 열정은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을 만큼 뜨겁다는 것이다. 또 많은 뮤지컬 제작자들은 트라이아웃 공연을 대구에서 계획한다. 1000석 공연장이 매진되는 희열을 대구에서는 곧잘 경험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구 계명아트센터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계명아트센터는 뮤지컬 관람에 적합한 공연장”이라며 “온 가족이 함께 ‘맘마미아’를 봤다”고 말했다. 공연 보기를 일상으로 즐기는 대구 시민들이 대구를 공연특별시로 만든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대구를 공연문화 도시로 키워 승부하겠다는 대구시의 끈질긴 문화정책이 포진해 있다.
예로부터 영남지역 선비문화를 주도했던 대구이다. 6·25전쟁 당시 극단 ‘신협’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국내 초연하면서 새로운 한국 연극을 출발시켰던 대구의 문화적 자긍심이 대구 시민의 DNA에 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구 시민이 공연 현장에서 노는 것이 일상 문화가 된 데에는 대구에 놀거리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일 수 있다. 대구광역시에는 대규모 테마파크도 복합쇼핑몰도 특징적인 공원도 없다. 지형 특성상 온천 관광지도 스키장도 해수욕장도 당연히 없다. 대신에 대구광역시에는 대공연장이 7개가 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하면 타 지자체의 2배 이상 보유율이다. 각종 통계를 보면 한 해 평균 공연 제작 수나 관람객 수도 서울을 제외하고는 대구가 가장 많다.
공연장이 시민 놀이터가 되는 공연특별시 대구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라는 튼튼한 자산을 낳고 길렀다. 그리고 이제 뉴욕시를 먹여 살리는 브로드웨이 부럽지 않은 결과물로 덕을 볼 때다. 대구공연특별시답게 공연 관광상품으로 풍성해지는 미래를 재설계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