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평론가
이날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 ‘직업 계층 이동성과 기회 불균등 분석’이 관심을 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버지가 1군 직업(입법 공무원, 고위 공무원, 기업 임원)에 종사할 경우, 자녀가 1군 직업을 가질 확률은 32.3%였고 3군 직업(서비스·판매·단순 노무 종사자, 농어업 종사자)을 가질 확률은 13%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3군 직업 종사자인 자녀가 1군 직업을 가질 확률은 16.6%인 데 비해 3군 직업을 가질 확률은 24.1%에 달했다. 1군 직업 어머니와 3군 직업 어머니의 자녀가 1군 직업을 가질 확률은 각각 45.5%, 17.1%였다. 부모 직업의 대물림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모의 자본·권력·직업 세습 앞에 노력과 실력이 무력화하는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와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 금수저 연예인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둥지 탈출’(tvN) ‘아빠 본색’(채널A) ‘엄마가 뭐길래’(TV조선) ‘졸혼 수업’(MBN) ‘내 딸의 남자들’ ‘별거가 별거냐’(E채널) ‘살림하는 남자들’ ‘슈퍼맨이 돌아왔다’(KBS) ‘미운 우리 새끼’ ‘싱글 와이프’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자기야-백년손님’(SBS)… 연예인 가족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연예인 가족 예능 프로그램이 급증하면서 이경규의 딸 이예림, 조재현의 딸 조혜정, 박남정의 딸 박시은, 이경실의 아들 손보승과 딸 손수아,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 등 수많은 연예인 2세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뒤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연예인 자녀의 연예계 입문 수단으로 전락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리고 “연예인 부모가 연예계 진출의 최고의 스펙이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방송 출연 기회를 잡고자 오랜 시간 엄청난 땀을 흘린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들은 피눈물을 쏟는다. 학수고대하던 연예계 진출 꿈이 좌절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습생 가족과 배우, 가수 데뷔는 했지만 연예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겨운 생활을 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무명 연예인 가족은 절망한다.
그리고 대중은 “연예인을 꿈꾸는 일반인 아이들은 방송에 1초라도 나오려고 수백 번 오디션을 보는데…”, “부모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TV에 나와 돈도 벌고 인지도(認知度)를 쌓아 연예인 꿈 이루는 로열 금수저에 분노가 느껴진다”등 출발지점이 다른 불공정한 경쟁을 펼치는 금수저 연예인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다.
2017년 대한민국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부모라는 금수저를 물고 나온 자식들이 교육에서부터 취업까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금수저만을 위한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노력과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 신화는 허망한 판타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절망과 분노가 깃든 ‘헬조선’ ‘망한민국’ ‘지옥불반도’ ‘이생망’이라는 신조어들이 쏟아진다. 노력과 실력으로 ‘스타’라는 성공을 일구던 연예계마저 이제 연예인 부모라는 배경이 성공의 사다리가 되는 ‘헬(Hell)연예계’가 되고 있다.
“이거(MBC 뮤직 ‘카라 프로젝트’, 2014년 5월 방송)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꼭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열심히 하겠다.” 5년여간 피땀 흘려 잡은 방송 출연 기회에 모든 것을 건 가수 연습생 안소진의 말이다. 그는 연예인 꿈이 좌절된 후 2015년 2월 24일 10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스물세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