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회원권 시작 골프로 ‘최고의 세일즈맨’…동물적 감각·승부 근성·열정으로 신뢰 쌓아
“회장님, 계약금이 없으시다고요? 카드 주세요.” 눈보라가 치는 한밤중이었다. 신용카드를 손에 쥔 그는 강릉 시내를 한걸음에 달려갔다. ATM(현금자동지급기)에서 현금을 뽑기 위해서다. ATM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것도 산속 콘도에서는 더욱 그랬다. 눈을 맞고 뛴 탓으로 온몸이 땀범벅이 된 그를 지켜본 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는 기꺼이 회원권 매입 계약을 했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또한 된다 싶으면 일단 일을 저지른다. 하다가 안 되면 바로 접는다. 이것이 그를 오늘날 동종업계에서 1위에 오르게 한 비결이다. 동아회원권그룹 김영일 회장이 창업 21년 만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계 최고의 기업인에 올랐다. 이는 ‘하면 된다’는 그의 생활신조와도 잘 맞물려 있다. 특히 동아회원권그룹은 동종업계에서 국내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상장을 했던 기업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세일즈맨이다. 한번 물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아니다 싶으면 포기한다. 이것이 그가 지닌 최대의 강점인 ‘동물적 감각’이다.
그가 레저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취업 시기를 놓쳤기 때문. 제대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대학 졸업이 조금 늦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또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업종이 있을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회원권이었다. 80년대 초 막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 콘도와 스키였다. 그는 결심했다, 이 업계에서 반드시 랭킹 1위를 하겠다고. 일단 레저 관련 기업에 입사했다. 세일즈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시절에도 영업을 해본 터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스키 이용권을 갖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은 사실 1년 내내 눈을 볼 수가 없는 곳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택한 것이지요. 남들은 스키라는 단어도 생소한 부산 사람들에게 어떻게 판매가 가능하겠느냐고 회의적이었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하지 못하거나, 하기 어려운 일을 동경하게 되거든요. 이것이 잘 맞아 떨어졌지요.” 그의 영업력은 뛰어났다. 남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시장을 개척했던 것이 주효했다. 영업실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레저업계 특성상 회사에서 그는 매번 1위를 차지했다.
90년대 들어 레저업계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키와 콘도에서 골프장회원권으로 옮겨간 것이다. 영업이 익숙해지자 창업을 머릿속에 그렸다. 발품을 판 만큼 실적이 비례하는 시장 상황을 잘 판단한 것이다. 말이 창업이지 직원 서너명과 책상 몇 개 놓고 일단 일을 벌였디. 그것이 1996년도다. 동아는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겨우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원권 업계에서 잘 나가던 에이스회원권거래소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타 공인 업계에서 톱 위치에 올라 있다. 이전에는 회원권 거래를 한 번이라도 해본 골퍼라면 10명 중 9명은 “동아요?, 에이스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이제는 ‘동아’를 먼저 떠올릴 정도가 됐다.
그만큼 회원권 업계에서 동아는 ‘신뢰의 브랜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동아의 눈부신 성장에는 두 가지 공존한다. 김영일 회장의 미래를 바라보는 탁월한 감각과 승부근성, 그리고 직원들의 열정이다. 일을 맡으면 날밤을 새워서라도 한다. 그도 퇴근을 하지 않는다. 직원들과 함께 야식을 하며 일을 한다. 바쁠 때는 말단 직원이 해야 할 일도 도맡아 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한눈을 팔지 못한다. 회장이 옆에서 일하는데 누가 딴 짓을 하겠는가. 야근을 하고 일을 마치면 전 직원들과 어울려 포장마차도 찾고, 더 늦으면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정말 직원들과 밤새워 일할 때 신바람이 났습니다. 하면 할수록 업계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졌지요. 시장이 황무지였으니까요. 먼저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우리 직원들과 마음을 합쳐 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가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뛰어난 분양능력이 한몫했다. 상장을 하고 그룹사로 잘 나갈 때 지사직원까지 합쳐 300여 명 정도였다. 이때 회원권을 전문으로 하면서 골프투어 여행사와 골프엔지니어링은 자회사로 두고, 골프전문지까지 발행했다.
특히 그는 유능한 직원뿐 아니라 파트너도 잘 만났다. 바로 골프레전전문기업 에머슨퍼시피그룹(대표이사 이만규)이다. 골프업계에서 전형적으로 ‘왼-왼(Win-Win)’한 사례로 꼽힌다. 골프회원권 시장이 막 눈을 떴을 때 동아회원그룹은 당시 에머슨퍼시픽이 운영하는 충북 진천의 진천 에머슨컨트리클럽(구 중앙)의 회원권 분양에 성공했다. 이어 경기 가평의 아난티서울(구 리츠칼튼)과 세종 에머슨, 힐튼 남해 골프앤스파리조트, 그리고 현재는 문을 닫았지만 금강산아난티 골프앤온천리조트까지 회원모집을 순조롭게 모두 끝냈다. 이때 에머슨퍼시픽 그룹 이중명 회장은 “동아가 하루에 5억 원씩 벌어줬다”고 밝힌 바 있다. 분양회사는 일반적으로 분양가의 일정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동아도 함께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동아의 분양방식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대부분 회원권거래소가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것을 탈피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일단 분양할 골프장에 대해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서 장점을 찾아냈다. 특히 골프장 인근 지역을 찾아 골퍼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 분양 가능한 금액을 산출해 냈다. 그런 뒤 홍보 마케팅에 집중했다. 동아에서 직접 발행한 골프잡지와 일간신문에 홍보를 총동원했다. 그리고 관련 책자를 만들어 동아의 수십만 명을 갖고 있는 DB를 활용해 발송했다. 대기업과 최고급 아파트에도 홍보물을 직접 돌렸다. 주말에는 전 직원이 골프장 입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주말에 홍보하는 곳은 동아직원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전설처럼 돼 있다. 골프장 내에는 분양 데스크를 마련하고 본사에서 파견한 직원이 상주했다. 이런 작업은 분양이 완료될 때까지 계속하는데,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한꺼번에 상상, 그 이상의 홍보마케팅 비용에 쏟아부었다. 또한 서울, 부산, 호남. 충남지사의 분양팀 전 직원이 매달렸다. 성공하면 반드시 직원들에게 보상을 했다. 이것이 오늘날 동아를 있게 하고, 동아만이 가진 독특한 기업문화가 됐다.
그는 회원권 시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국내 회원권 시장이 일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레드오션’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하지만 이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시장을 만드는 것도 기업이 할 일이지요. 때문에 저는 회원권 시장이 핑크빛 ‘블루오션’은 아니더라도 절대로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내는 나름대로 ‘그들만의 리그’가 있어 회원권을 반드시 갖고 싶어 하는 골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거래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신규 회원권이 등장하면 새로운 소비층이 생깁니다.”
동아는 프로골프 발전을 위해 남녀 골프단을 창단해 운영하고 있다. 또한 프로골프 대회도 개최한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카이도시리즈 동아회원권 다이내믹 부산오픈을 연다. 스페셜올림픽에 기부를 했고, 전 직원이 체육대회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대회 때 ‘사랑의 온그린’으로 기부금을 만들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나서고 있다.
김영일 회장은 “국내 경기침체,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감소 등으로 기업 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회사의 더 큰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도 이루어져야 하고요. 지금까지의 성과에 만족한다면 발전이 없습니다. 항상 직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회사가 할 일 이지요.”
최근 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위해 동아는 가수 태진아를 홍보대사 및 모델로 발탁했다. 김영일 회장이 이끄는 동아회원권그룹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