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료 인하 시점을 놓고 보험업계가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주요 손해보험사는 실손보험료 인하를 논의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 케어)으로 실손보험료 인하는 피할 수 없겠지만 관련 세부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인하 여부를 구체화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주요 생명보험사 역시 보험료 인하는 보류 중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건강보험에서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의료비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는 게 목표다.
이에 손보사들은 실손보험료 인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넓어지면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는 줄어든다. 보험사가 지출하는 보험금이 줄어드는 만큼 보험료를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시점이다. 중소형사는 대형사 움직임을, 생보사는 손보사 추이를 곁눈질하면서 정부 분위기 파악에 급급한 분위기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늘어나면 실손보험료도 인하하는 게 마땅하다”면서도 “구체적 로드맵이 나온 상태 아니라 요금 인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험료는 보통 작년 통계지표를 기준으로 책정한다”며 “당장 인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험업계가 실손보험료 인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실손보험을 이미 적자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 손해율은 지난해 기준 130%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와 지출한 보험금의 비율이다. 100%가 넘으면 적자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건보 보장범위가 넓어지는 것과 동시에 손해율도 나아진다는 지표가 있어야 보험료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상품 감리 결과로 보험료 인하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금감원은 2008년 5월 이후 보험사가 판매한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조사한 결과 ‘불합리한 보험료 산출 유형’에 하나 이상 포함된 회사가 전체 24곳 중 21곳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그간 부당하게 초과납입한 건수는 최소 40만 건이며 금액은 100억 원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해당 보험사들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하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