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2부 차장
바로 ‘가축 축(畜)’과 ‘쌓을 축(蓄)’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에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 10여 일 동안 농축산물은 말 그대로의 뜻을 잃고 살충제가 축적(蓄積)돼 국민 건강을 해치는 위험 먹거리로 전락했다.
여기에 생리대 부작용이 유아용 기저귀로 확산하고 있으며 E형 간염 유발 논란을 빚은 독일과 네덜란드산 수입 소시지 등은 국민에게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온 국민이 무엇을 먹고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내몰렸음에도 미흡했던 보건 당국의 대응이다. 산란계 농장의 살충제 성분 전수조사에서 1979년 이래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 농약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가 검출됐음에도 당국은 이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조사 과정 중에서는 검역 담당자가 무작위로 계란 샘플을 채취하지 않고, 농장이 골라준 것을 조사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DDT 관련 조사에 대한 이중 잣대도 논란이 됐다. 친환경 계란 농장은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DDT를 포함, 농약 320여 종에 대한 잔류물질 검사를 했다. 반면 일반계란 농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27종 농약에 대한 잔류물질 검사만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DDT는 빠져 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은 생리대 부작용 사태에서도 계속됐다. 앞서 3월 시민단체와 대학 연구팀이 국내 생리대 10종에서 발암물질을 포함한 유해물질 22종을 검출했다고 발표했지만, 식약처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어 생리대에 대한 전수조사 요구가 시민사회에서 이어졌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논란이 확산하자 23일에서야 릴리안에 대한 추가 검사를 결정했고, 24일에는 릴리안을 생산하는 깨끗한나라뿐만 아니라 유한킴벌리, 엘지유니참, 한국피앤지, 웰크론헬스케어 등 국내에 유통되는 생리대 물량의 90%를 생산하는 다른 생리대 제조사로 현장조사를 확대했다. 이 모두가 논란이 확산하자 시행한 후행적인 조치들이다.
문제는 더 있다. 살충제 계란, 생리대 부작용과 같은 화학물질로 비롯된 일들이 얼마든지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화학안전원에 따르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담긴 화학물질이 1만8000여 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물질 가운데 유해성 여부를 파악하는 물질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85%는 인체에 해로운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일례로 살충제 계란 파문을 더욱 키웠던 DDT가 산란계와 계란에서만 검출됐을 거라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안일한 판단이다. 살충제 계란 문제로 취재하던 중 농관원 관리자로부터 비록 손에 꼽는다고는 하나 일반 농산물에서도 DDT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DDT가 아니더라도 여타 농약의 잔류 허용 기준치를 넘은 농산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관리는 제대로 됐을까. 감사원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2016년 11월 안전성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산물 35종이 시중에 출하돼 유통·판매되기도 했다. 특히 2014년 출하된 일부 취나물은 농약 잔류 허용기준을 최대 71.9배 초과하기도 했다.
40여 년 전 사용 금지된 DDT가 아직도 검출되는 판국이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밝히는 한편 검사 인력 확충과 검사 대상 및 품목, 허용 기준의 강화 등 총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