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각층 인사 참여 ‘수사심의委’ 도입… 특수부 줄이고 민생 관련 형사부 강화
“적법절차·인권보장 못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인혁당 사건 등 과거 시국사건을 검찰의 ‘과오’라고 언급하며 이같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과거사를 두고 검찰총장이 직접 사과한 건 검찰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문 총장은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문 총장은 잘못 처리한 과거 사건의 대표 사례로 인혁당 사건(1964·1974년)과 강기훈 씨 유서대필 조작사건(1991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2000년) 등을 꼽았다.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사건들이다.
문 총장은 검찰 수사기록 공개 범위를 전향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그는 “청렴하면서도 국민의 법 상식과 시대 변화에 맞게 바른 검찰이 되겠다”면서 “검찰 공무원의 비리 감찰과 수사에 대해서는 외부로부터 점검을 받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무일號’ 출범 한달… 검찰 개혁·적폐 수사 집중 = 문 총장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문 총장은 그간 하명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던 특별수사 총량을 줄이고, 민생과 밀접한 형사부를 강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문 총장은 어느 때보다 거센 검찰 개혁 요구를 받으면서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문 총장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개혁을, 문재인 정부로부터는 국정농단 등 이른바 적폐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각각 요구받고 있다. 문 총장은 취임사에서 “최근 국민의 검찰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저조하다. 이제는 검찰의 모습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한다”며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이라는 3대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검찰의 고질로 지목된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대해 그는 “총장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지키는 든든한 반석이 되고 버팀목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검찰개혁 공약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공수처보다 더 효율적인 시스템도 있다”고 말하는 등 공수처 신설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공수처 연내 설치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청와대, 그리고 “공수처 신설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비교해 ‘엇박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도 ‘사법경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등 원론적인 입장만 내비치고 있다.
문 총장은 취임 후 특별수사 총량을 축소하고 형사부를 강화하는 방침을 정하는 등 자체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전국 41개 지청 단위 특수전담이 폐지됐고,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규모가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검찰총장 직속으로 범죄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그간 검찰총장 권한을 축소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 중 하나로 조직 축소 등이 검토되거나 실행된 바 있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검·경 수사권 조정 이슈와 별개로 자체 개혁 방안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미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는 검찰개혁위원회와 수사심의위원회 신설을 약속하고, 그 구성을 위한 세부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활약했던 한동훈 검사를 배치하는 등 주요 보직 인사를 마무리한 만큼 조만간 대대적인 사정수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일어난 ‘대선 댓글 공작’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다. 이미 특검팀으로부터 박근혜 정부에서 생산된 일명 ‘캐비닛 문건’ 일체를 넘겨받는 등 국정농단 사건 추가 수사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상사에 직언 않는 검사, 책임묻겠다” = 최근 문 총장은 ‘상명하복’식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렸다. 몸을 사리느라 상사에게 제대로 진언을 하지 못해 일을 그르칠 경우 부하직원에게 진언을 하지 못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문 총장은 최근 전입한 중앙간부들에게 “일에 대해 누가 최종적으로 책임이 있는지도 보겠지만, 아랫사람이 진언을 한 적이 있는지 여부도 살펴보겠다. 진언을 하지 않은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문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사가 지시한다고 해서 (아랫사람들이)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며 “부하나 후배검사,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진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또 “상사는 후배나 부하직원이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아랫사람이 하는 말을 중간에 자르고 ‘됐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등 야단치는 식으로 하는 것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해왔다.
앞서 법무부는 일부 검찰 고위·중간간부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며 ‘과거 부적절한 사건 처리’, ‘검찰 신뢰 저해’ 등을 이유로 들었다. 문 총장의 발언은 평검사들에게도 이같이 일처리가 잘못되도록 묵인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