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함께 적절한 보상 반발 최소화… “섣부른 정책 되레 역효과, 경제성장 못하면 중단될 수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선서식에서 경제분야 최우선 국정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함께 재벌개혁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부터 재벌개혁을 외치면서 재계는 물론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졌다.
◇재벌개혁의 딜레마=상황은 녹록지 않다. 올해 1분기 1% 깜짝 성장세를 보였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분기에는 다시 0%대로 내려앉았고,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 재계 안팎에서는 섣부른 재벌개혁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구조 특성상 재벌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재벌개혁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투자와 고용 등 경제에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삼성을 비롯한 5대 재벌기업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재벌개혁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 법인세 인상을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지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8월 ‘문재인 정부의 반기업 정책이 한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법인세 인상 방침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포브스는 법인세 인상 카드가 재벌 개혁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석하며 자칫 법인세 인상이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즈벨트는 어떻게 재벌을 개혁했나=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근대 경제성장 중심에는 재벌이 있었다. 19세기 미국 경제는 석유왕으로 불리는 록펠러와 철강왕 카네기, 금융왕 JP모건 등 일부 거대 자본가 손에 좌지우지됐다. 특히 미국 경제는 록펠러 가문과 모건 가문에 의해 양분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들 가문이 정·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들은 남북전쟁 당시 군수물자에 뒷돈을 대면서 막대한 부를 일궜고,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미국 기반산업이었던 석유와 금융업에 뿌리를 내리고 경제 전반을 장악했다. 독점이나 노동에 대한 규제가 없던 이 시대에 이들은 갖가지 탈법과 담합, 독과점, 노동 착취로 재벌의 지위에 올랐다.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정부는 재벌들의 편의를 봐주며 정경유착을 조장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의 낙수효과는 크지 않았고 국민의 반재벌 정서는 극에 달했다. 급기야 대중은 재벌기업을 ‘강도 귀족’이라 불렀다. 미국 사회는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오르면서 일변하게 됐다. 뉴욕주지사 때부터 반(反)재벌정책을 펴왔던 루즈벨트는 1900년대 초 대통령에 올라 독과점 횡포가 극에 달했던 대기업에 과감히 메스를 꺼내 들었다.
◇“규제의 칼만 있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루즈벨트가 재벌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개혁의 칼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 국민의 반 재벌 정서,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독과점 규제 정책, 그리고 기득권 세력이 적당히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 마련 등 삼박자가 갖춰졌기에 재벌개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당시 재벌들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고, 당시 언론들이 이를 폭로하면서 국민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루즈벨트는 반 재벌 여론에 힘입어 대기업의 리베이트 관행을 저지하는 ‘엘킨스법(1903)’, 철도회사 운임의 독점을 막는 ‘헵번법(1906)’ 등을 잇달아 입법했다. 1911년에는 스탠더드 오일 소송 전에서 승리해 당대 최대 기업연합(트러스트)을 해체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미국 재계에서는 트러스트를 통해 하나의 기업이나 경영자가 동종업계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이러한 인식이 자리매김하기까지 루즈벨트의 ‘출구 전략’도 한몫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트러스트 해체 후에도 기존 지분을 인정해주거나 적절한 보상대책을 마련해줌으로써 재벌들의 기득권 포기를 유도했다. 기득권 해체로 인한 이들의 반발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러한 노력에 재벌기업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도 점차 개선됐다.
◇“재벌개혁 성공, 경제성장에 달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월 13일자 ‘문재인 정부의 까다로운 미션, 주식회사 코리아를 길들여라’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와중에도 문재인 정부가 소수 대기업 지배력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문 대통령이 재벌 개혁을 위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임명한 점에 주목하면서 “이달 후반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개요를 내놓기로 하는 등 기업들의 변화도 시작됐다”고 전했다. FT는 결국 재벌 개혁의 성공 여부는 문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재벌 개혁이 경제 성장을 동반하지 못하면 과거 정권처럼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