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정경유착 척결’ 강한 의지… 재벌가 비리 처벌수위 높아질 지 관심
문재인 정부가 기치를 내건 정경유착 철폐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금권(金權)’을 앞세운 재벌들의 권한 남용이나 부패를 뜯어고쳐 불투명한 기업지배 관행, 무분별한 경영권 승계 등 총수(總帥)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카드를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배임·횡령·탈세 등 총수들의 일탈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높여야 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재벌한테 유독 관대(寬大)했던 사법성향부터 바꾸자는 의미다.
최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안팎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회장님’ 재판을 지켜보는 기업 관계자들의 어두운 낯빛이 이를 방증한다. 문 정부 들어 사법개혁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총수의 운명을 가를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롯데, ‘왕자의 난’에 총수일가 법정行 = 지난 2015년 장남과 차남의 경영권 분쟁, 이른바 ‘롯데 왕자의 난’이 본격화되면서 들춰진 롯데 3부자(父子)의 경영비리는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랐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롯데그룹 총수일가(신동빈·신동주·신영자·신격호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씨 등)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신동주 전 부회장, 서미경씨 모녀 등에게 급여 명목으로 508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신동빈 회장은 수사과정에서 경영실패를 감추기 위해 롯데피에스넷을 부당지원하는 과정에서 471억 원대 손실을 계열사에 떠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갖가지 명목으로 검찰이 파악한 전체 범죄금액 3755억 원 가운데, 총수 일가가 유용한 자금은 1500억 원대 규모로 확인됐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관행을 이어오면서 총수일가의 기업 사유화 및 사금고화(私金庫化)로 시장경제 질서를 훼손한 것이다. 이들 롯데그룹 총수일가의 1심 재판은 연말쯤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 소진세 사회공헌위원장, 채정병 전 롯데카드 사장 등 총수일가의 경영 비리에 엮혀 재판에 넘겨진 임원만 24명에 달한다.
◇‘분식회계 원조’ 효성家, 노(老)회장 일가 끝없는 법적 분쟁 = 분식회계, 조세포탈, 횡령, 배임 등 효성 일가는 여러가지 송사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다. 조석래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2013년 회사 지분을 1300억 원에 기관투자자들에게 넘기고 난 후 아버지와 형제들을 상대로 각종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조현준 회장은 증여세 70억 원을 탈루하고 회삿돈 1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4년 1월 기소돼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석래 전 회장은 7900억 원대 분식회계·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오는 20일 항소심 첫 재판을 시작한다.
현재 조 전 회장 측이 낸 소송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받은 조사·감리결과 조치와 해임권고조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과세당국을 상대로 낸 세금 불복 소송 등 총 4건이다. 분식회계와 조세포탈 혐의 관련해서다. 해임권고조치 취소 소송은 1·2심에서 져 대법원까지 갔으나 효성 측에서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됐다.
무엇보다 지난 1년간 해외에 체류하며 검찰 조사에 불응해 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조 부 사장은 2014년 친형인 조 회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해 이른바 '효성가(家)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조 전 부사장은 2015년 고발인 자격으로 몇 차례 검찰 조사를 받다가, 지난해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하자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싱가포르에서 체류해왔다. 과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을 맡아왔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 횡령의혹 벗어…부인 이화경 부회장은 재판에 = 검찰은 올해 4월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200억 원대 횡령의혹을 놓고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오리온그룹 전직 임원 5명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담 회장에 대한 비리를 담은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됐다. 그러나 검찰은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과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가 담 회장을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해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이화경 부회장이 미술품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해 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4억2000여만 원 상당의 회사 소유 미술품을 자신의 집으로 빼돌린 혐의(횡령)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오리온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작품의 매입·매각·전시·보존·임대 등 관리업무를 총괄해왔다.
◇최태원 SK 회장, 아내 노소영 관장 상대로 이혼 조정 신청 =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최 회장은 조정 대상에 재산분할은 포함하지 않았다. 앞서 최 회장은 한 일간지에 편지를 보내 노 관장과 이혼 의사를 밝히며 혼외자녀의 존재를 공개한 바 있다.
최근 이들의 이혼조정 신청 사건의 첫 기일이 10월11일에서 11월15일로 변경됐다. 조정은 법원 중재로 협의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절차로 당사자는 직접 참석해야 한다. 노 관장 측은 “장녀의 결혼식을 열흘 가량 앞둔 상황에서 부모가 이혼문제로 법정에서 만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기일 변경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K측은 “노 관장이 해외 출장을 이유로 법원에 기일 변경 신청을 한 것”이라며 “장녀 결혼식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재산분할 문제는 노 관장이 본소송 후 위자료 청구와 재산분할이 포함된 반소를 제기해야 심리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