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hired!(당신을 채용하겠다!)”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 인선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3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을 떠나기 전 차기 의장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보는 3명으로 압축됐다. 재닛 옐런 현 연준 의장, 제롬 파월 현 연준 이사,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다.
◆시장 안정성과 경제 성장 입증…‘구관이 명관’ 재닛 옐런
재닛 옐런 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임은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통화정책의 안정성 때문이다. 옐런은 시장에서 선호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40년간 연준 의장이 모두 연임했던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내년 2월 임기가 만료되는 옐런이 연임할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은 현 기조를 유지한다. 옐런은 비둘기파로 분류되며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주장한다. 그는 벤 버냉키 전임 의장으로부터 완화된 통화정책을 이어받다가 고용과 임금지표가 개선되자 완만한 긴축 쪽으로 선회했다. 2015년 12월에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지난 6월까지 4차례 인상했다.
옐런이 차기 연준 의장이 된다면 12월에 금리를 한 차례 더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옐런은 금리 인상을 계획하면서도 연준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는 인플레이션 등 물가 동향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학적 규칙을 적용하는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에 비해 정책의 유연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연준 내외부적으로도 조용하고 섬세한 리더십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재임 기간 성적도 나쁘지 않다. 옐런이 주도한 완만한 긴축은 미국 경제 회복세를 뒷받침했다. 현재 미국 경제는 3%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실업률도 16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뉴욕증시는 사상 최고치 기록을 연일 새로 쓰고 있다. 금융자문회사 에버코어ISI가 투자가 1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차기 연준 후보 중 미국 증시를 가장 지지할 사람으로 옐런이 꼽혔다. 시장이 느낄 안정성도 강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사설에서 “이미 국가 통화정책 수행 능력에 대해 입증된 기록을 가진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며 옐런을 차기 의장으로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 교체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집권 공화당의 반대다. 2014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옐런은 규제 강화를 강력하게 지지해왔다. 금융 부문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공화당과 충돌한다. 이 때문에 의회 통과가 난관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연준 의장 후보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옐런과의 면담 후 “나는 그녀를 정말 좋아한다. 아주 잘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옐런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직에 오른 최초의 여성이다. 주요 7개국(G7)에서 여성 중앙은행장이 탄생한 것도 옐런이 처음이다.
◆“꿩 먹고 알 먹고” 안전한 베팅 제롬 파월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가 사실상 3명으로 좁혀진 가운데 시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제롬 파월 현 연준 이사가 가장 안전한 베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파월 이사가 의회에서 여야 반발이 가장 적은데다 정책적으로는 비둘기파 성향을 보이고 있어 연준의 기존 정책 스탠스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세 명의 미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이사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가 해당 기사를 보도한 날은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현 연준 의장인 재닛 옐런의 ‘연임 면접’을 했던 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정책적 안정성 유지 측면에서 옐런의 연임을 기대하면서도 또 다른 한쪽에서는 파월 이사 발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치 베팅사이트 ‘프레딕트 잇(PredictIt)’은 파월 이사의 지명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파월 이사는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W.H 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정치 성향은 공화당 쪽이다. 이에 옐런 의장과 테일러 교수의 절충 인사로 거론되고 있으며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물론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연준 의사로 발탁돼 연준 내 실무 경험도 두루 갖췄다는 점에서 민주당에서도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 역시 자체 조사 결과 공화·민주 양당으로부터 반대 의견이 없는 후보는 파월 이사뿐이라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을 지명할 경우, 그가 추진하는 ‘금융규제 완화’와 ‘연준의 통화정책 지속성’ 모두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파월은 옐런과 달리 금융규제 완화에 개방적이다.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출신인 파월은 금융 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월 이사는 연준 의장 후보 중에서도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그는 2012년 연준 이사에 임명된 이후 어떤 연준 정책 결정에도 반대하지 않으며 5년간 4차례의 금리 인상에 찬성해왔다. 이에 옐런의 연준과 연속성을 가질 것으로 평가된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안전한 베팅’을 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파월이 후보 중 가장 온건파 성향인 옐런보다는 더 가파른 금리 인상을 선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금융정책 변화 원하면 매파 존 테일러
‘테일러 준칙’을 정립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존 테일러 경제학 교수는 대표적인 ‘매파’다. 그는 현재 거론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 중 가장 매파적인 인사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가 발탁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가 1993년 논문에서 정립한 테일러 준칙은 기준금리를 수학적 규칙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으로 테일러 교수는 종종 노벨 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언급됐다. 테일러 준칙은 물가 상승률, 실업률 등 수학적 정의에 따라 기준금리를 정하자는 주의다. 이 이론에 따르면 2012년 이후부터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지금보다 높아야 한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테일러가 차기 연준 의장이 되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연 1.00~1.25%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테일러 준칙을 적용할 시 기준금리는 대략 3.75% 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낮은 실업률이 금리 인상의 대표적인 근거다. 지난 6일 미국 노동부는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이 4.2%를 기록해 지난 2001년 2월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실제 2011년 테일러 교수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회의원들도 종종 테일러 준칙을 인용했다. 공화당의 젭 헨살링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은 “연준이 수학 공식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도록 법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과 국회의원들은 테일러 준칙을 적용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기계적으로 설정하는 데 회의적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015년 연준이 테일러 규칙을 적용케 하는 법안을 의회에서 논의했을 때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미국 경제과 미국 국민에게 중대한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리가 올라가면 소비에 제동을 걸고 달러 강세를 일으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피하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테일러는 “저금리 정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논문에서 “테일러 준칙은 지침일 뿐이며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연준 의장이 된다면 테일러 교수는 현실적인 방향으로 접근법을 선회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망했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정책을 결정하는 지위에 오르면 본래 성향보다 더 유연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즉 가장 매파적인 기조를 드러내는 테일러 교수가 진짜 의장이 되면 현실과 타협하며 기조를 수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김나은 기자 better68@
이지민 기자 aaaa3469@
이주혜 기자 win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