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국감’ 막을 대안…여야 2014년 연 2회 개최 입맞추고 흐지부지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형식적, 내용적인 면에서 예년 국감과 대동소이하게 막을 내리면서 상시국감 체제로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여야 공수교대만 이뤄질 뿐,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희박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2일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이번 국감에 D학점을 매긴다”며 “정책국감을 벌이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이 막판 치명상을 입혔다”고 평했다. 이어 이 총장은 “지금의 국정감사권은 국회에 ‘행정부 견제, 감시’라는 코스프레만 할 수 있는 정도의 권한”이라면서 “앞으로도 ‘호통국감’, ‘맹탕국감’으로 끝날 공산이 다분한 만큼 여야가 합의했던 상시국감 체제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시국감 필요성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국감 무용론’ 등 국감의 효용과 내실이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서 과거부터 대안으로 꾸준히 제시돼왔다. 1년치 국정 현안을 몰아서 벼락 치듯 감사하기보단 적시에 상임위별로 국감을 벌여야 생산성도 높아지고, ‘정쟁국감’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총장의 언급대로 여야는 한때 상시국감 도입에 합의했던 적도 있다.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던 시절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국감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19대 국회에서 첫 국감을 치른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초선 의원들이 “일하는 국회”를 위해선 상시국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2014년 연초에는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원내대표가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통해 상시국감 도입을 여당 등에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이 수용하면서 여야는 6월, 9월 이렇게 연 2회로 국감을 나눠 실시하는 방안에 합의했고 이는 ‘상시국감’의 전 단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작 그 해부터 이러한 합의는 무용지물이 됐다. 4월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워낙 컸던 데다 국회 하반기 원구성 문제, 새누리당의 전당대회 등 정치일정도 이어지면서 흐지부지됐다. 이듬해에도, 그 이듬해에도 분산 국감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정치권의 의지 부족이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상시국감 체제로 갈 경우 정부만이 아니라 정치권 부담 역시 덩달아 배가되는 까닭에 국회에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20여 일 동안 500개가 넘는 피감기관을 감사하려다 보니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역설적으로 상시국감 체제로 가면 ‘겉핥기’로 갈음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야당 시절 상시국감을 요구하다 여당이 된 민주당에서도 상시국감 요구 목소리는 더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당 한 관계자는 “상시국감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 “내년만 봐도 지방선거가 6월에 있잖나. 기존 6월, 9월 분리 국감안은 사실상 폐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 지금은 국감 제도의 취지를 못 살리고 있다. 정부와 국회 보좌진들이 괴로워질 순 있지만, 상시국감이 맞다”며 “상, 하반기에 집중국감을 한 번씩 하고 임시국회에 추가로 하거나 지금처럼 정기국회 때 집중국감을 하되 임시회 때 수시로 국감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처장은 “정부는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 권력 남용이나 직무 유기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면서 민주당을 겨냥해 “혹여라도 여야가 처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당의 입장이 바뀌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부 보좌진들도 상시국감을 원하고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한 달을 폐인으로 사는 것보다는 정기적으로 국감을 하는 게 우리 삶의 질에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고, 한 야당 관계자 역시 “사람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 20일인가 싶을 정도”라며 “빨리 국회법이 개정돼 상시국감을 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상시국감과 함께 ‘공동보좌관풀제’도 정책국감을 위한 보완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금처럼 각 의원실 소속 보좌진들만 두는 게 아니라, 의회에서 공동으로 정책보좌진을 구성해 의원들의 국감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광재 총장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을 사족처럼, 개인 사람으로 부리고 싶어서 꺼릴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