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 몬스터스튜디오 대표
“스펀지밥이랑 호빵맨은 아이들 만화로 알려져 있지만 어른들이 봐도 재밌죠. ‘브레드 이발소’를 한국의 스펀지밥 같은 ‘국가 대표’ 애니메이션으로 키울 겁니다.”
8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만난 정지환 몬스터스튜디오 대표(36)는 “국내에는 뽀로로나 타요처럼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많지만 어른들이 봐도 재밌는 작품은 아직 없다”며 “성인에게도 인정받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몬스터스튜디오의 ‘브레드 이발소’는 제각각의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힐링 애니메이션이다. 두 주요 캐릭터는 식빵과 우유다. 브레드 이발소의 사장이자 이발사 ‘브레드 피트’는 몸에 알파벳 ‘M’이 ‘W’로 잘못 인쇄돼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던 윌크(Wilk)의 콤플렉스를 치유해주고, 윌크는 비정규직 견습사원으로 브레드 이발소에 취직해 브레드를 돕는다. 브레드 이발소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캐셔 ‘초코’와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유기견 ‘소세지’까지 이발소 가족을 이룬다. 정 대표는 “브레드 이발소의 숨은 진짜 주인공은 브레드와 윌크가 아니라 이발소라고 볼 수 있다”며 “이 공간에서 브레드는 다양한 콤플렉스를 가진 디저트 손님들을 예쁜 토핑으로 꾸며주고 마음을 치유한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도움을 주는 베테랑 작가들과 함께 써 내려간 90여 편의 시놉시스는 저절로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지는 스토리로 가득하다. 머리가 커서 ‘미운오리 새끼’로 놀림받던 컵케이크 손님이 브레드의 솜씨로 ‘백조’로 거듭나기도 하고, 범죄자로 수배 중인 악당 파이가 인상을 바꾸기 위해 브레드 이발소에 찾아오기도 한다. 정 대표는 “시나리오가 한편 나올 때마다 굉장히 많은 수정 작업을 거친다. 여섯 번까지 수정한 것도 있다”며 “재미와 내러티브를 조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브레드 이발소’의 등장 인물들이 정 대표의 머릿속 상상 이미지에서 실제로 말하고 움직이는 캐릭터들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국 유학 후 라이엇게임즈 등을 거쳐 국내로 돌아와 ‘꼬마버스 타요’와 ‘뽀로로’로 알려진 아이코닉스에 다니던 정 대표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2014년 사직서를 내고 이듬해 몬스터스튜디오를 창업했다. ‘마카롱처럼 예쁜 디저트도 아니고 콧수염 달린 아저씨 식빵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느냐’, ‘창업하면 빚진다’는 주변의 진심 어린 만류와 걱정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신청한 정부 지원 사업은 16번 연속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서울의 창업 기관에서 지원을 받지 못한 그는 연고가 없던 광주시의 스타트업 지원자 모집에 턱걸이로 합격, 지원금 9000만 원을 받고 사무실을 얻었다. 곰팡이가 핀 오래된 사무실이었다.
이곳에서 정 대표가 ‘나홀로’ 완성한 5분짜리 파일럿 동영상은 줄줄이 좋은 소식을 불러들였다. 창업 2개월 만에 신용보증기금이 주최한 스타트업 대회에 나가 200개 기업 중 1등을 한 것을 비롯해 3곳에서 수상하고 중소기업청의 창업 맞춤형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상금이 쌓이면서 자본금도 늘어났다. 기업에서도 협업 요청이 들어와 미스터피자의 머핀 브랜드 ‘마노핀’과 두 차례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모두가 말리던 창업을 했는데 망하기는커녕 수익이 생기더라”는 그는 “1년 동안 2억여 원을 벌면서 브레드이발소 후속 에피소드 제작금을 마련했다”고 돌이켰다.
투자자도 ‘브레드 이발소’의 가치를 알아봤다. 광주에서 몬스터스튜디오를 눈여겨보던 대교인베스트먼트가 14억 원을 투자해 준 것이다. 정 대표는 “7억 원만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걸로 되겠느냐면서 두 배를 해주셨다”며 “그 덕분에 총제작비 28억 원 중 현재 투자와 회사 수익으로 75% 정도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교 측의 투자와 함께 대교방송 케이블 방영도 확정됐다. 최근에는 40여 편 에피소드의 지상파 방영 계획도 사실상 확정돼 내년 가을부터는 TV에서 브레드이발소를 만나볼 수 있다. 현재 몬스터스튜디오 12명 직원들과 정 대표는 열심히 막바지 작업 중이다.
앞으로 TV 방영을 통해 브레드 이발소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몬스터스튜디오는 IPTV와 VOD 사업, 유튜브를 통한 추가 수익과 함께 본격적으로 지적재산권(IP)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는 “앞으로 라이선스는 대교 TV사업부에서 주관해 펼칠 계획이고 머천다이징(자체 상품 제작)은 시청률을 참고해 국책 사업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몬스터스튜디오는 현재 국내 최대 캐릭터완구기업과 한창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 진출은 내후년부터 본격적으로 모색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달 일본 훗카이도 삿포로 국제영화제에서 칠드런 부문 대상(그랑프리)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국내외 영화제와 애니메이션 축제에서도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영국 BBC와 중국 CCTV처럼 관심을 보이는 해외 방송국 관계자도 속속 생겨났다. 정 대표는 “내년 방영 이후 2019년 2~3분기부터 해외 판권 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다”며 “특히 동남아시아와 유럽 시장을 겨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브레드 이발소 외에도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정 대표는 영락없이 타고난 제작자였다. 그는 “우선 브레드 이발소를 제대로 키워내고 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조금씩 펼쳐나갈 계획이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