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거래정보 분석후 영업·마케팅 활용…스마트공장 구축·업체간 협업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 제약·바이오 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후보물질 탐색부터 임상시험, 제조·유통 등 산업의 전 가치사슬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이 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해서다.
◇빅데이터 기법 도입해 맞춤형 영업·마케팅 =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노력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제품 개발과 영업·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다. 일동제약은 최근 일반의약품 사업에 ‘빅데이터 분석’ 방법을 도입했다. 올 초 출범한 온라인의약품몰 일동샵에서 발생하는 거래 정보를 분석해 마케팅 효과를 높이는 방안이다. 일동제약은 약국이 일동샵에서 직접 약을 구매함으로써 어떤 지역에서, 어느 계절에, 어떤 약을 많이 구입하는지 등의 구매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일반소비재와 의약품은 유통구조가 다르다. 의약품은 도매상의 직거래를 거쳐 약국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지역별·상품별 소비 패턴 등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지만 온라인몰을 통해 직접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은 마케팅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일동제약은 내년부터는 빅데이터 기반의 영업 활동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거래처를 더욱 세분화해 거래처별 특성에 맞는 최적의 판매서비스를 제공하고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와 연동해 해당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마케팅 방향을 설정하는 방식 등을 고민하고 있다.
중견제약사인 유유제약은 지난해 국내 제약사로는 처음으로 빅데이터 기법을 마케팅에 접목한 곳이다. 유유제약은 어린이용 진통소염제로 판매하던 베노플러스겔의 매출이 주춤하자 2013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멍-아이’보다는 ‘멍-여성’의 키워드 조합이 6배나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성형수술 등으로 생긴 부기를 빼길 원하는 20~30대 여성을 겨냥해 ‘멍 치료제’로 질환군과 타깃을 바꾼 결과 1년 만에 매출을 50% 늘렸다.
동아에스티도 복합제 개발 과정에 빅데이터 분석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유헬스정보연구소와 함께 전자의무기록 데이터를 분석, 수요와 부작용 사례까지 발굴해 약 개발에 따른 비용과 리스크를 줄인다는 전략이다.
스마트 공장 구축도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추기 위한 제약사들의 대표적인 행보다. 15일 준공식을 가진 대웅제약의 오송 신공장은 2100억 원이 투입된 최첨단 스마트팩토리다. 고품질 의약품 생산을 위해 각 제조공정마다 인위적 오류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폐쇄형 시스템, 제품의 주요공정 데이터가 실시간 자동 저장되는 품질운영시스템(QMS) 및 실험실관리시스템(LIMS) 등 도입된 IT시스템만 9가지다. 이 밖에도 유나이티드제약, 한미약품, 제일약품 등도 스마트공장을 가동 중이다.
◇AI 활용한 신약개발, 국내선 업체 간 협업 통해 ‘스타트’ = 정부도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약바이오업계의 도약을 물밑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AI를 활용한 신약이나 진단 솔루션 개발 등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된 바이오산업 육성책도 확대해 추진하는 것이 큰 그림이다.
보건복지부가 15일 진행한 ‘제2차 제약산업 육성 지원 5개년 종합계획(안)’ 공청회에서는 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활용한 신약 개발 생태계 조성 추진 방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국가 R&D 사업을 통해 생산·수집된 화합물·유전체·건강보험 정보 등의 공공 빅데이터 활용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문인력 양성 체계 구축 차원에서는 보건산업진흥원·제약바이오협회 등을 연계해 보건의료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신약개발 AI 운용·개발 전문가 등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최근 첨단바이오의약품 제조업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암 검사나 치매 진단 예측 등에 있어 빅데이터와 AI 등 ICT 기술 결합이 활발해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정부도 맞춤형 규제를 최소화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가진 빅데이터를 기업들에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항암제가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최소 12년 이상의 시간과 약 3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하지만, AI를 도입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어 화이자, 얀센 등 다국적제약사는 이미 신약 개발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신약개발 인공지능 지원센터’를 설립해 장기적 과제로 AI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미약품과 녹십자, 종근당, 동아에스티, 유한양행, 대웅제약 등 18곳 제약사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TF 구성 후 세 차례 정도 회의를 했다”면서 “업계가 가장 선호하고 현재의 시장 상황에 부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