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대표적 난치성 질환 중 하나다. 원인조차 불분명해 근본적인 치매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의 치료제는 인지기능 개선에 작용하는 수준으로, 임상3상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한 약물도 없다.
그럼에도 국내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들은 새로운 기전을 갖는 치료제 개발에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급격한 인구고령화에 따른 성장성과 잠재력 때문이다.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2016년 말 69만 명에서 2030년 127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규모는 2012년 4000억 원 수준에서 2020년 2조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치매국가책임제’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추진키로 한 것도 시장 확대의 촉매제다. 현재 국내 업체가 개발 중인 치매치료제 26건에 대한 임상시험이 승인됐으나 대부분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임상 성공률 0.04% 불과한 치매치료제, 규제 풀어 개발 지원 =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치매치료제를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분류해 관리·지원하는 ‘첨단바이오의약품법’이 상정됐다. 정부가 치매전문가, 제제(製劑)전문가, 정책ㆍ허가ㆍ심사 등 분야별 전문가로 이뤄진 ‘치매치료제 및 진단기기 제품화 기술지원단’을 구성해 제품 개발 단계별 특성에 맞는 기술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치매치료제는 치료 수단이 없는 질환에 사용하는 만큼 다른 의약품보다 우선해 심사하는 ‘우선 심사’나 자료를 나눠 제출하는 ‘맞춤형 심사’, 시판 후 안전관리를 조건으로 허가하는 ‘조건부 허가’ 등이 허용됐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법안에 대한 강한 입법 의지를 보이고 있다. 치매의 질병 원인 자체를 치료하는 제품 개발이 시급한 데다 최근 10년간 치매치료제의 임상시험 성공률이 0.04%에 불과한 만큼 범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최근 첨단의약품 제조업체 CEO와의 간담회에서 “치매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와 같이 규제를 최소화해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재 치매치료제 개발을 위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제약·바이오업체는 일동제약, SK케미칼, 메디포스트 등 25곳이다. 일동제약은 멀구슬나무 열매인 천련자에서 추출한 천연물 알츠하이머성 치매신약인 ‘ID1201’의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ID1201은 치매의 주요 발병 원인을 억제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작용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포스트는 전 세계 최초로 제대혈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 원료로 알츠하이머병(치매 및 경도 인지장애) 치료제 ‘뉴로스템’을 개발 중이다. 임상 및 임상1상을 완료하고, 현재 제형을 변경해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1, 2a상을 진행 중이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뉴로스템은 뉴런(신경세포)에 독성을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줄이고 뇌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는 작용을 해 치매의 원인 물질 감소 등을 통해 근본적인 치료와 함께 예방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케미칼도 할미꽃 뿌리인 천연물을 이용한 치매치료제 ‘SK-PC-B70M’의 임상3상을 완료했다.
전 임상 단계에 있지만 2013년 동아치매센터를 만들어 치매 관련 연구를 시작한 동아에스티는 신경전달 물질 증가 등에 효과가 있는 ‘DA-9803’이라는 이름의 천연물 소재 기반 치매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붙이는 패치형·한 달 약효 주사제 등 편의성 높인 제품 개발도 활발 = 오리지널 제품의 순응도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복제약이나 개량 신약의 개발도 활기를 띠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1%도 안되는 치매치료제 시장에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새로운 제형을 개발해 틈새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대웅제약과 아이큐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도네페질 제제를 이용해 피부에 붙이는 패치형 치매치료제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임상3상 단계에 있다. SK케미칼은 노바티스의 복제약(엑셀론)인 패치형 치매치료제 SID710에 대해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패치형 제품은 보호자가 환자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약을 부착할 수 있어 투약이 편리하고, 약효 지속력도 뛰어다는 게 장점이다.
동국제약은 지난해부터 매일 약을 챙겨 먹기 어려운 환자가 많다는 데 착안, 한 달에 1회 투약으로 약효가 유지되는 도네페질 주사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약 발효 시간이 짧은 기존 속박형 제형의 단점을 개선한 서방형 제품도 개발 중이다.
노바티스의 치매치료제인 엑셀론의 복제약을 개발한 바이오벤처 ‘씨트리’는 치매치료제 성분이 인체 내에서 서서히 방출되도록 하는 서방형 제품(개량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 측은 자주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제형 변화와 함께 중증으로 적응증 확대까지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원인 치료가 가능한 치매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데다 정부 지원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돼 누가 가장 먼저 임상시험에 성공해 상용화하느냐가 시장 선점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