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에 속한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이번 합의가 비단 다른 나라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 최초로 다른 나라와 연계한 자본시장 시범 사업 타이틀’은 한국의 몫이 될 수도 있었다. 중국과 영국에서 후룬퉁에 대한 연구작업이 시작된 시점은 2015년. 우리는 그보다 앞선 2013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CSD(예탁결제원) 연결사업’, ‘크라우드퉁(通)’ 등의 사업을 합의한 바 있다.
물론 계획을 먼저 세웠다고 성과가 먼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상회담에서 커다란 방향을 잡는 것과 실무적인 성과가 가시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보다 심각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이 위안화 허브가 되기 위한 전략적 의도로 위안화 거래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그 반대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이 지속한다면 한국은 중국 자본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중국의 자본시장 협력이 뒷걸음친 배경으로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제조업의 경우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로 성공을 거뒀지만, 금융 영역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공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대도시에 경쟁적으로 지점을 만들던 한국 금융사들은 2013년부터 지점을 줄이는 추세다. 실패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회의적인 인식만 커졌다. 민간 차원에서 중국 시장 공략에 대한 의지 자체가 많이 퇴색된 측면이 있다.
한국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는 문제도 여전하다. 중국과의 교류 협력 확대 필요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여전히 정부를 비롯해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의 고위 인사는 대부분 미국 유학파가 차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제도적인 돗자리를 깔아 주더라도 구체적인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의사결정권자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발생한 문제들이 ‘중국 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오인된 사례가 많다.
언급한 문제점들이 모이면 중국 관련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실패 사례가 많아지면 정부의 의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민간 금융사들이 중국 관련 비즈니스 기회를 줄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한국과 중국의 자본시장 교류협력이 답보하고 있는 동안 중국은 약 10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3대 채권시장을 개설했고 영국, 독일 등과 자본시장 협력 관계를 꾸준히 강화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 사드(THAAD)를 둘러싼 한·중 갈등을 겪는 동안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도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적인 금융 선진국 영국이나 독일이 괜히 중국에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으로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야 할 시기다. 한국의 의사결정 영역에 중국을 잘 아는 그룹을 마련하고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덧붙여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새판을 짤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교류 협력 방향이 정부 차원에서는 중앙정부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지방정부 간 교류 협력을 활용한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예상한다. 민간 금융사에도 유효한 전략이다. 그동안 진출했던 대도시는 사실상 중국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가까웠다. 산둥, 칭다오, 웨이하 등의 자유무역구로 눈을 돌린다면 훨씬 편안한 환경에서 경쟁자 없이 중국 시장을 잠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