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게임이 아니라 진짜 소코반을 했다. 집에 좀 늦게 들어온 날, 현관 앞에 냉동고가 끌려 나와 있었다. 현관, 거실을 거쳐 부엌을 지나 뒤 베란다 안쪽, 세탁기가 있고, 잡동사니를 얹어놓는 3단 선반이 있는 비좁은 공간에 8~9년 놓여 있던 거다. 그 공간에 이르려면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붙박이 수납장이 있는, 그 공간보다는 넓지만 역시 비좁은 공간을 거쳐야 한다.
넓지 않은 집을 넓은 것처럼 묘사한 건 그 냉동고, 수명이 다돼 어느 날 내용물이 몽땅 썩어 버린 그 냉동고를 꺼내는 게 고난도 소코반 풀이만큼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선 김치냉장고를 냉장고 쪽으로 옮겨야 한다. 다음엔 위에 놓인 걸 다 내려놓고 선반을 해체해야 한다. 그 후엔 세탁기와 벽 사이, 꼭 그 크기의 공간에 들어앉은 문제의 냉동고를 앞에서 끌어내야 한다. 냉동고가 선반 있던 쪽으로 나오면 이제 옆에서 김치냉장고 자리까지 밀거나 끌어내야 한다. 냉동고가 김치냉장고 있던 곳까지 나왔으면 이제는 뒤에서 거실로 밀어내고, 거실로 나오면 담요를 밑에 넣고 현관까지 끌고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치냉장고를 원위치로 옮겨야 한다.
냉동고가 고장 난 걸 알았을 때, ‘나 혼자서는 안 될걸, 사위 놈들 불러서 밥 먹이고 일 시킬까’ 하고 궁리만 하며 차일피일했는데 못 참은 아내가 혼자 저 큰일을 ‘거행’한 것이다. 아내는 177㎝인 내 어깨에 이마가 닿고, 냉동고는 내 턱까지 닿았다. 아내가 더 큰지 냉동고가 더 큰지는 모르겠다. 냉동고가 아내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저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 그날 아침 뭔가로 말싸움을 한바탕하다 “닥쳐!” 비슷한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섰더랬는데 돌아와 보니 아내는 하루 종일 혼자서 ‘소코반’을 하면서 분을 푼 거다. ‘분노와 화염(Fury and Fire)’이 ‘할머니 헐크’를 만든 거다. 분노는 생쥐도 코끼리로 만든다! 왜 말싸움을 했는지는 벌써 까먹었다. 별것 아닌 걸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러니 까먹었지. 그러나 “닥쳐!”라고 소리 지른 건 하루 내내 찜찜했다. 누구 잘못으로 시작된 말다툼이든 “닥쳐!”로 끝내서는 안 됐다는 후회였을라나.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자기 부모의 모습에 대해 “서로 조화를 이룬 두 마리 새가 엮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은 오로지 매 순간 부조화와 모순을 치열하게 조정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라는 감상을 자서전에 남겼다.
미국 영문학자 스티븐 그린블랫(1943~ )은 셰익스피어 연구서 ‘세계를 향한 의지’에서 “(그의 희극에 나오는) 부부간의 대사는 보통 남편과 아내의 대화가 그렇듯이, 별 내용 없는 얘기인 동시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간 얘기이기도 하다”고 썼다.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라고 한 미당(未堂)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는 그런 부부들의 고즈넉한 모습을 그린 것이겠지. 이런 글을 여기 옮겨 쓴 건 한 살 더 먹어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