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조금씩 나눠 투입한다면 3~4번 실패 감당할 수 있어
이동건(39) 스스로자 대표는 ‘자영업’의 의미를 어느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법인명인 스스로자의 ‘자(自)’자를 ‘자영업(自營業)’에서 따왔다는 설명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창업시장을 보면 전부 프랜차이즈 같은 의존형 창업입니다. 그런데 의존형 창업은 사실 스스로 하는 게 없어요. ‘자영업’이 ‘스스로 영위하는 업’을 뜻하는 것처럼, 스스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창업 전까지만 해도 국내 굴지의 항공사에 다니던 10년차 직장인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빠른 승진을 이어가며 촉망받던 직원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회사를 떠났다.
“30년 근무한 선배가 권고사직을 하게 됐는데, 퇴직을 준비하기는커녕, 다음 날부터 바로 회사에 나오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결코 아름다운 퇴장이 아니었죠. 그런데,그게 얼마 후 나의 모습이 아니겠어요?”
이런 삶이 행복한 것일까. 한참 그런 질문을 속으로 되뇌였다. 결론은 나의 일을 해야겠다는 것. 회사를 퇴직하고 1인 화로구이 전문점을 개업했다. 퇴직금 정도만 투입한 소자본 창업이었다. 30대에는 창업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후 인테리어 사업을 병행하고 일식 요리학원에도 다녔다.
“인테리어 사업은 인테리어 전문점을 창업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고요. 음식점 인테리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했죠. 이제는 첫 번째 음식점을 보면, 인테리어 견적에 어떤 거품이 있는지 다 보입니다. 지금 한다면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2호점으로 우동 전문점을 개업한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3호점인 제철해물 전문점 ‘상인정신’을 광화문에 열었다. 상인정신이라는 상호에 대해 그는 일종의 ‘자기최면’이라며 웃었다.
“할 거 없으면 밥집이나 하지 뭐, 그런 마인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 빠져 있는 핵심가치가 바로 ‘상인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의 차별화 전략은 ‘오감만족’에 있다. 간판, 인테리어, 메뉴판은 모두 손님들의 시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의 가게 간판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상인정신’이 한자로 쓰여 있는 것이 전부다. 간판만 봐도 우리 가게에 대해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검은색 계단을 올라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 정통 일본식 인테리어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띈다.
매일 아침 노량진 새벽시장에서 직접 공수한 해산물의 종류와 가격에 따라 메뉴판도 새로 만든다. 실내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모두 청각에서 오는 즐거움을 위해 그가 직접 선정한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따뜻하게 데워진 물수건을 내놓는데, 촉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서비스다. 후각과 미각은 맛있는 음식으로 채운다.
물론, 개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인테리어 공사까지 다 끝내고 오픈을 1주일 남겨 놓은 때였다. 그는 보건소에서 정화조 용량 미달로 사업자 등록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전 주인이 폐업신고를 한 후 환경법이 개정되면서 이 대표는 바뀐 법을 적용받게 된 것이었다. 업체 두 곳에 문의를 해도 건물이 워낙 오래돼 정화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새 정화조를 묻을 여유 공간도 없다고 했다. 다른 업체를 수소문해 겨우 1층 실내를 파 새 정화조를 짜 넣었지만, 2000만 원의 공사비를 떠안게 됐다. 창업비용 1억 원 중 운영자금으로 쓸 2000만 원을 고스란히 공사비로 날린 것이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복병도 있지만, 이 대표가 창업 초기에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권리금’이었다.
“상인정신을 개업할 당시에 광화문 주변 상권의 권리금은 보통 1억5000만 원가량이었습니다. 사실 상권에 대한 권리는 높은 월세에 충분히 반영돼 있는데, 광화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월세와 권리금이 중복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는 권리금이 없는 곳을 찾아 지금의 자리에 개업했다. 그가 지금까지 가게를 낸 곳은 모두 권리금이 없다. 이 대표는 권리금을 줄여야 창업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향후 가게를 내놓더라도 권리금 회수가 안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1인 소자본 창업’이라는 콘셉트로 창업을 시작했다. 창업을 위해 빚을 내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실패’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빚을 내 그걸 하나의 매장을 창업하는 데 모두 쓴다면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셈이지만, 조금씩 나눠 투입한다면 3~4번의 실패는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스리아웃도 아닌, 원아웃에 나가떨어지면 안 된다는 거죠. 사실 월세와 인건비만 해결되면 그 가게는 절대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는 창업 비용만 최소 1억 원이 넘게 들지만, 1인 소자본 창업을 하면 월세와 인건비 때문에 흑자 도산할 일도 없다고 봅니다.”
그는 최근 20~30대의 창업에 대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로 진입했다는 뜻이라는 것. 좀 더 젊은 시절에 자기주도적인 창업을 한다면 사장 입장에서 사업을 크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취업을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 대표의 목표는 ‘자영업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인테리어에서부터 식자재, 비품 등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구조다. 또는 면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제면기를 구매하는 식으로 재료를 스스로 마련할 수도 있다.
“서로 품앗이나 두레처럼 상부상조할 수 있는 모델이 되면 원가를 낮춰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뜻을 같이할 분들을 만나면 꼭 함께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