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인수합병(M&A) 시장이 금융당국의 깐깐한 잣대에 한파가 몰아 닥쳤다. 인·허가권을 쥔 금융당국이 사실상 인수의 마지막 관문인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놓고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자, DGB금융지주의 하이투자증권 인수 등 지난해 이뤄진 M&A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하이투자증권 자회사 편입 승인 인가 신청을 낸 DGB금융지주에 대한 금융당국의 심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행법상 자회사 편입 승인은 접수 이후 60일 내에 심사하도록 돼 있다. 추가 자료 제출 기간이 있을 경우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3개월 내에 심사를 마무리 해야 한다. 그러나 인·허가권을 쥔 금융당국의 입장 변화가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당국이 대주주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상황 판단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DGB금융 대주주 적격성 심사 ‘답보’ = 지난해 12월 대구지검은 비자금 조성·횡령 등 혐의로 경찰이 신청한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박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DGB가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데 큰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분석에 힘이 쏠렸다. 박 회장의 정치적 리스크가 아니면 DGB금융의 경영상태나 경영·사업계획 부문에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구속 영장을 재청구하기 위해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고, 시민단체들이 박 회장뿐 아니라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에 대해서도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이 있다며 즉각 수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사실상 당국의 심사가 답보 상황에 빠졌다.
박 회장은 대구은행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비자금 일부를 지역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조사를 재차 받고 상황이다. 이른바 ‘상품권 깡’을 통해 수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요지다. 만일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의 인허가 접근 방식이 달라졌다” 며 “당초 심사 역시 비자금 의혹 등 비정성적인 문제까지 ‘저인망식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투, 하나UBS자산운용 지분인수 향방은 = 최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3연임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하나금투의 하나UBS자산운용 인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나UBS자산운용 인수 건은 금융당국이 김정태 회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중단했다.
하나금투는 작년 9월 스위스 글로벌 금융그룹인 UBS로부터 하나UBS자산운용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지분 인수가 완료되면 하나UBS자산운용은 하나금융투자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된다. 하나금융은 하나UBS자산운용의 대주주 변경과 실제 지분 정리를 지난 연말까지 마치고 올해 초부터 새롭게 영업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하나금투는 하나UBS운용을 대표 운용사로 만들기 위해 기존 부동산 전문 하나자산운용의 이름을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으로 먼저 바꿀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의 은행법 위반 혐의에 따라 검찰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인수 승인 심사를 중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서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최순실 씨 자금관리를 도운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에게 승진 특혜를 줬다며 김 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을 은행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금융당국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를 반영해 판단하겠다는 입장만 전달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케이프투자증권과 케이프인베스트먼트로 구성된 케이프컨소시엄의 SK증권 인수도 난항을 겪고 있다. 자금조달 구조 등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