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로 논란을 겪은 금융감독원이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유보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자체 혁신안 이행 등을 조건으로 공기업 지정을 피했다. 정부가 금감원과 산은·수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한다며 관치 논란이 제기되자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31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018년도 공공기관 지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금감원은 채용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비효율적 조직 운영 등에 관한 감사원 지적 사항 등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앞으로 공공기관 수준으로 경영공시를 하고 경영평가에 기재부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중 1인 이상이 참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단, 공운위는 금감원이 이를 미흡하게 추진할 경우 내년에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금감원,독립성·중립성 앞세워 기재부 감시·통제 피해 = 금감원은 2007년 공공기관으로 한차례 지정된 후 2009년 해제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공공기관 지정이 유력시되는 분위기였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그룹 부실 사태에 이어 지난해 채용 비리 등 방만경영으로 구설수가 잇따르면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기재부에 예산과 인건비 등을 상세하게 보고해야 한다. 또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아야 하는 등 예산과 인사 전반에 걸쳐 기재부의 감시·통제를 받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 역시 금감원 수입예산의 80%를 차지하는 감독분담금을 부담금으로 지정해 예산을 직접 통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이에 현재 금감원의 기존 소관 부처인 금융위가 ‘중복 규제’ 프레임을 주장하자, 부처 간의 갈등으로 확전됐다. 또 금융감독기구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를 권고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준과도 배치된다고 반대했다. 여기에 정치권도 공공기관 지정 반대 움직임에 가세하며 기재부를 압박했다. 금감원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는 최근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기재부에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금감원 감독업무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감안한 조치를 내려한다는 주장이다.
◇산은·수은, 혁신성장 지원 위해 공기업 지정 피해 = 산은과 수은도 공기업 변경 지정을 피했다. 당초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관리 부실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앞서 기재부는 이들이 자산 2조 원 이상.전체 수입의 85% 이상을 직접 벌어들이는 시장형 공기업 지정 요건을 충족했다는 점에서 공기업 변경 지정을 추진해 왔다. 여기에 대우조선 등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방만경영 논란을 빚은데다 낙하산 인사에 채용비리 의혹까지 제기되며 정부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정부 역점 과제인 혁신성장 지원을 위해 신속한 자금 집행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공기업에 지정될 경우 법인으로의 투자가 제한되는 동시에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각각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 특성상 신속한 자금집행이 어려워진다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