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질질 끌다 발표…구체적인 예산 마련 방안 부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조5000억 달러(약 1643억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청사진을 내놓자마자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방안이 너무 허술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에 떠넘긴 트럼프노믹스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년 내내 “인프라 투자 계획 발표가 임박했다”며 시장의 기대심리를 자극했다. 예컨대 작년 5월 1일에는 “인프라 투자안이 2~3주 안에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감만 키우던 계획안은 12일(현지시간) 55쪽짜리 문서와 함께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 땅에 번쩍이는 새 도로, 다리, 철도 등을 건설할 것”이라며 “미국 역사상 가장 막대한 인프라 투자”라고 강조했다. 계획안은 도로, 다리, 공항 등 전통적인 기반시설뿐 아니라 음용수와 폐수 시스템, 수자원, 에너지, 지방 지역시설 등에 투자하는 안을 포괄하고 있다.
주목할 건 전체 1조5000억 달러 인프라 투자 계획 중 연방정부가 10년간 2000억 달러만 투입하고, 나머지 1조3000억 달러는 주·지방 정부와 민간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투입하는 2000억 달러 중에서 1000억 달러는 주 정부의 재건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원된다. 농촌 지역의 보조금 형태로 투입되는 500억 달러는 주지사가 재량으로 쓸 수 있고, 300억 달러는 기존 인프라 프로그램에 쓰인다.
계획안대로라면 주 정부가 투자금의 80% 이상을 부담하고 연방정부는 20%의 지원금만 제공하는 셈이다. 피터 드파지오 민주당 하원 의원은 “이것은 또 다른 사기이며 정부의 기능을 사유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 영국 방송 BBC는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안은 비판 받을 지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대규모 감세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켜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막대한 인프라 투자는 재정 건전성에 타격을 준다. 자금 압박을 받은 주 정부가 결국 국민에게 세 부담을 전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올리거나 휴게소 이용료 부과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연방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공공 인프라를 민영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로널드레이건워싱턴국립공항과 덜레스국제공항을 비롯해 조지워싱턴기념공원, 다차선식 고속도로인 볼티모어-워싱턴파크웨이 등이 유력하다고 뉴욕포스트(NYP)는 전했다. 트럼프 정부는 워싱턴 지역에서 더 나아가 남서부 전력 관리국, 서부 전력 관리국, 테네시 밸리 당국 등 대형 에너지 공급업체들을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리서치업체인 컴퍼스포인트의 아이작 볼탄스키 애널리스트는 “이 계획안은 죽은 계획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계획안이 실현 불가능한 이유를 3가지로 요약했다. 자금 조달에 관해 정책적 합의가 없다는 점, 민주당이 25년 만에 유류세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쟁점화를 앞둔 것, 입법 일정상의 난항 등이 그 이유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1년 동안 텅 빈 모습을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국민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인프라 투자 계획안을 공개했다”고 비난했다.
◇엇갈리는 희비 = 한편에서는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 계획안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중장비 업계, 시멘트 업계 등이 대표적이다. 이날 관련 업체들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철강사 뉴코어는 전 거래일 대비 2.7% 상승한 63.44달러를 기록했고, 중장비업체 캐터필러의 주가는 전일 대비 2.06% 상승한 152.29달러로 마감했다. 캐터필러는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 기대감에 힘입어 지난 1년간 주가가 50% 이상 올랐다. 시멘트 공급업체 벌컨머티리얼즈는 전 거래일보다 1.73% 오른 127.16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트럼프 소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앞에는 시위대가 몰려와 인프라 투자 계획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