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의 시작과 끝으로 불리는 최순실(61) 씨와 박근혜(66) 전 대통령에게 뇌물 70억 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최 씨는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13일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하고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및 알선수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최 씨에게는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 원, 추징금 72억9000만 원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안종범(59)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징역 6년에 벌금 1억 원, 명품가방 2점 몰수, 추징금 4290만 원을 선고받았다.
◇신동빈 회장 '실형'...법원 "선처하면 뇌물공여 유혹 떨치기 쉽지 않을 것"
재판부는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70억 원을 '뇌물'로 보고, 신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은 물론, 제3자뇌물죄의 핵심인 '부정한 청탁'까지 인정했다. 명시적 청탁은 없었지만,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 사이에 롯데 월드타워 면세점 사업 관련 돈이 오간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재판부는 당시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 롯데의 가장 큰 현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호텔롯데 상장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호텔롯데가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탈락해 상장이 어려워졌고, 롯데는 청와대와 관세청을 상대로 전방위적 로비를 벌였다.
재판부는 "2016년 3월 15일 단독 면담 때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에게 K스포츠재단 추가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도 롯데의 면세점 현안을 잘 알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신 회장 역시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70억 원을 출연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날 신 회장을 뇌물공여자이자 강요 피해자로 인정했다. 대기업이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뇌물수수와 강요죄는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며 "불이익 걱정과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공무원 직무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고 경쟁력 있는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 심사 탈락 이후 재취득이 절실했던 신 회장 입장에서 대통령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유사 상황에서 다른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는 경쟁기업을 비롯해 정당하게 정부로부터 사업자로 선정되려는 기업을 허탈하게 했다"며 "공정 절차를 진행하려는 국민 희망을 무너트렸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뇌물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로 선처하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노력하기보다는 위험 따르더라도 직접 영향 있는 뇌물 공여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뇌물은 질서를 해치고 대통령 관련이면 특히 그렇다"고 강조했다.
◇법원 "최순실, 국정 혼란 야기하고 국민 실망시켜"...중형 선고
재판부는 최 씨가 박 전 대통령, 안 전 수석과 함께 대기업을 압박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 원을 받아낸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봤다. 사실상 '청와대'가 나서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청와대가 나서 출연 기업 명단을 정하고, 재단 명칭과 기본 재산 비율 등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딸 정유라 씨 승마 지원비용 등으로 433억 원 상당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에 대해서는 72억9000만 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뇌물공여 약속 부분과 차량 대금만 무죄로 판단한 셈이다. 다만 개별현안이나 '승계작업'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을 모두 인정하지 않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2800만 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은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K스포츠재단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비용 명목으로 롯데 측에서 받은 70억 원에 대해서는 강요 혐의와 뇌물 혐의 모두 유죄로 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K스포츠재단 해외전지훈련 비용 등으로 89억 원을 요구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밖에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KD코퍼레이션과 플라이그라운드에 일감을 준 혐의 △포스코에 펜싱팀 창단을 요구한 혐의 △KT에 플레이그라운드 광고대행사 선정을 요구한 혐의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더블루케이와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혐의 △포레카 지분 강탈 미수 혐의 등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의 주된 책임은 지위와 권한을 나눠준 대통령과 사익을 추구한 최 씨에게 있다"며 "국정 혼란과 국민이 느낀 실망감에 비춰보면 죄책이 대단히 무겁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주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를 안 보인다"고 꾸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