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가 기약없이 연기되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가 SK하이닉스와 미국 배인캐피털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하는 방안이 1차 시한(지난달 말)까지 중국 반독점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지 못하면서 계약 조건에 따라 다음달 1일이 2차 시한으로 잡혔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EU(유럽연합)·중국·브라질·필리핀·대만·일본 등 8국 가운데 중국만 유일하게 승인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승인을 하더라도 계약을 마무리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2차 마감 시한까지 승인이 이뤄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미국과 무역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와 퀄컴의 네덜란드 NXP반도체 인수 등 미국 기업이 관련된 수십억 달러 규모 인수·합병(M&A) 거래에 대한 검토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또 WSJ은 중국의 승인 지연이 장기화하면 도시바의 도시바메모리 매각 철회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시바 고위 임원도 “무역긴장 때문에 검토 절차가 기본적으로 일시 중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1차 시한이 지나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취소할 권리를 확보한 도시바가 중국의 몽니가 지속되면 매각계약 철회를 요구해 온 일부 주주들의 의견을 수용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작년 미국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으로 악화한 도시바의 재무 상황이 최근 대규모 증자 등을 통해 개선된 점도 도시바메모리 매각 취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한·미·일 연합이 미국과 중국 간 첨예한 무역 갈등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미국이 중국 기업의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인수를 막는데 맞서 중국도 현지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관측에서다.
실제 한·미·일 연합의 인수 자금 중 30~40%가 미국의 베인캐피털과 애플, 델 등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중국 정부는 미국 퀄컴의 네덜란드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 NXP 인수 계획도 승인해주지 않고 있다. 퀄컴의 NXP 인수 계약 시한은 25일로 연장됐으며, 중국 상무부는 2주일 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중국 진출 미국기업 단체인 미중무역전국위원회(USCBC)의 제이컵 파커 중국 사업 부대표는 “합병에 대한 검토와 결정은 시장에 기반한 계산을 토대로 해야 한다”며 “절대 미·중 간 관계의 정치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