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성적인 쌀 공급 과잉을 억제하기 위해 올해와 내년 5만㏊씩 총 10만㏊의 벼 생산 면적을 줄인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재 벼 재배 면적 75만5000㏊의 13%에 이르는 규모다. 하지만 농가의 신청이 절반 이하로 저조해 이를 보완할 대책이 요구된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 등 농업계에 따르면,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쌀 생산 조정제는 벼 재배 농가에 지원금을 줘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벼 재배 농지에 쌀 대신 콩이나 조사료 등 타 작물을 재배할 경우 정부가 ㏊당 평균 340만 원을 지원한다. 품종별로 조사료 400만 원, 콩 280만 원, 일반작물 340만 원 등이다.
하지만 최근 쌀값 상승세 등 기회비용 증가 요인들로 벼 재배 농가들의 참여는 저조한 상황이다. 한 달 전인 지난달 19일 생산조정 추진 실적은 1만1447㏊로 목표인 5만㏊의 22.9%에 불과했다. 지역별 달성률은 전북 38%, 전남 26%, 충남 18%, 경기 6% 수준에 그쳤다.
무엇보다 산지 쌀값이 80㎏ 기준으로 지난해 7월 12만7600원에서 올해 3월 16만9264원으로 32.7% 급등했기 때문이다. 쌀 목표가격도 현재 18만8000원에서 19만2700~21만4400원까지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쌀의 기계화율은 97.8%에 달하는 반면 밭농사는 56.3%에 그쳐 연간 노동시간이 2배 가까이 차이난다. 여기에 농기계 추가 구입 등 재배작물 전환에 따른 기회비용 증가로 농가들은 생산조정 참여를 꺼리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농가들은 계속해서 쌀농사를 지으면 가격이 떨어져도 정부 직불금으로 소득이 보전되니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농림부와 농협은 행동에 들어갔다. 올해는 기획재정부의 반대 등으로 수확기 시장격리가 불확실한 상황에 쌀값 하락까지 우려돼 대책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농협은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중앙회 및 전 계열사 임원진과 전국 299명의 대의원 조합장이 참석한 가운데 논 타작물 재배사업 5만㏊ 성공 추진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국 농협이 앞장서 쌀 생산 조정제를 적극 홍보해 구조적인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다.
이 자리에서 농협은 산지농협 참여 확대를 통해 총 18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마을 단위 간담회 개최 등 농가 대면 홍보를 확대해 쌀 생산조정제 추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국내 쌀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농협이 논 타작물 재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농가소득 5000만 원 달성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다음날인 21일에는 전국의 농협에 친서를 보내 생산조정제의 취지를 설명하고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김 회장은 친서에서 “정부의 시장격리 정책 등으로 힘겹게 회복시킨 쌀값의 유지를 위해 쌀 생산조정제의 성공적인 안착이 중요하며, 지금의 참여가 올해 쌀 수급과 가격 형성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호소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김종훈 농림부 차관보와 김원석 농협경제지주 농업경제대표이사가 사단법인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의 김광섭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만나 쌀 생산조정제 성공 추진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김 대표는 “논 타작물 재배 5만㏊ 달성을 위해 범농협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산지 농협과 농업인의 참여 확대를 위한 무이자 자금 지원은 물론 타작물 농작업 편의 제공을 위한 농기계를 보급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쌀 생산조정제 사업에 적극 동참해 근본적인 쌀 수급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탠다는 설명이다. 농협은 무이자 자금 2000억 원과, 타 작물 재배 시 농기계 지원예산 20억 원을 편성했다. 아울러 임직원이 전국의 농업 현장을 방문해 쌀 생산조정제 시행 목적과 기대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참여를 촉구했다. 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이달 중순 생산조정제 신청 면적은 목표치의 40%인 2만㏊를 넘어섰다. 생산조정 신청 접수는 이달 20일 마감된다.
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달 중순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해 벼 재배의향 면적은 73만4000㏊로 전년 대비 2만1000㏊ 감소할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7% 줄어드는 것으로, 지난해 감소폭(3.1%) 대비 낮은 수준이다. 2만1000㏊는 올해 정부 목표치인 5만㏊의 42% 규모다.
올해 시장 격리는 없을 것으로 가정하고 표본농가 벼 재배의향 면적에 평년 단수(529㎏/10a) 적용 시, 생산량에서 정부 매입량을 뺀 2018년산 쌀 시장 공급 물량은 353만2000톤으로 예측됐다. 2017년산 대비 27만 톤(8.3%) 많은 수준이다. 산물벼 인도로 향후 산지 쌀 가격 상승세는 다소 완화할 전망이다.
KREI는 “민간 재고 부족 현상이 지속되면서 쌀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올해 쌀 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논 타작물 재배 참여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