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한 달 만에 중재의향서 늑장 공개…쓰리크라운스 대리인 선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6억7000만 달러(약 7000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 정부에 배상을 요구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13일 엘리엇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중재의향서를 접수했다고 11일 밝혔다.
중재의향서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은행(WB)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정식 제소하기 전 해당 국가에 중재 의사를 타진하는 절차다.
엘리엇은 향후 본격적인 ISD를 대비해 중재의향서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않았다. 다만 3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부당하게 개입해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고 적시했다.
엘리엇 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삼성 일가를 위해 박 전 대통령, 최순실, 문 전 장관, 국민연금, 삼성의 중역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한미FTA 조항 가운데 내국민대우 조항(11.3조)과 최소대우기준(공정 공평 대우) 조항(11.5조)을 위반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엘리엇의 이러한 주장은 일각에서 이번 ISD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정부와 법원이 엘리엇에 ISD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문 전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외압 의혹과 관련해 1, 2심에서 유죄를 인정받았다. 보건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는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은 적폐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한미FTA 규정에 따라 엘리엇의 중재의향서를 접수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답변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중재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부는 2012년 미국 론스타, 2015년 아랍에미리트 하노칼, 이란 다야니 등 과거 세 번의 ISD에서도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법무부가 중재의향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ISD는 오는 7월 초에 제기될 전망이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네 번째 ISD에 휘말리게 된다. 엘리엇은 소송대리인으로 미국 로펌인 쓰리 크라운스(Three Crowns LLP)를 선임했다. 쓰리 크라운스는 한국 정부가 세 번째로 피소된 다야니 측 법률대리인이기도 하다.
한편 엘리엇의 중재의향서 접수 이후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논란이 됐다. 법무부는 한 달이 돼서야 원문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했다. 한미FTA에 따라 중재의향서는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ISD는 결과에 따라 수조~수천억 원을 국민 세금으로 물어내야 한다”며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