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현재 지배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나서서 빨리 문제를 풀어야한다.”
김상조 위원장이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 그룹 CEO 정책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전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에 이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삼성생명의 자발적 전자 지분 매각을 주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문제를 말하면서 자신이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았을 시절인 2016년 2월 작성된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분석과 전망’의 경제개혁연대 보고서를 언급했다. 그는 “보고서 안에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모든 법률적 위험 요소와 시행 방안을 다 써놨다”고 말했다.
해당 보고서는 삼성그룹 지주사 체제 전환이 최소 3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3단계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3단계 수순이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 설립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허용시 상기 두 개의 지주회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3단계 수순은 현행법 상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하다. 중간지주회사는 대기업 그룹이 금융계열사 지배구조를 더 수월하게 변경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혀왔지만, 중간지주회사 도입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금산분리 원칙과 위배된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고, 도입의 움직임도 아직까진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3단계의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법적 걸림돌을 정부가 해소해주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첫 단추는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처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삼성 및 재계에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려면 약 26조 원의 금액이 들어가는 만큼, 지분매각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봤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도 역시 공정거래법상 개정안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1대 주주인 삼성물산에 이어 2대 주주가 되는 정도의 지분조정만 하면되고,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 그만큼 삼성생명이 매각하는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최대주주(8.23%)인 삼성생명이 2대 주주 삼성물산(4.63%)보다 지분을 낮추면 되는 셈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유지분 3.6% 이상(10일 종가기준 약 12조 원)을 매각하면 된다.
삼성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답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도 “깊이 고민하고 있고”고만 말했다. 삼성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서서히 매각하며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행동에 따라 향후 정부도 중간지주회사 설립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